홀깃, 라스베가스, 홀깃, 미국

사막 한가운데 세워진 신기루와 같은 도시 라스베가스에서는 두 밤을 보냈습니다. 둘째 날에는 새벽에 출발해 밤늦게 돌아오는 그랜드캐년 투어를 다녀왔으니, 도착한 날과 떠나던 날 반나절씩, 딱 하루를 본 셈입니다. 미국 여행을 함께하고 있는 동생이 아직 미국 기준으로 성인이 되지 않은터라, 카지노도 클럽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겉에서 홀깃 구경만 하고 갑니다. 그래도 라스베가스 스트립의 밤거리를 환하게 비추던 휘황찬란한 네온사인과 쉴새없이 돌아가는 슬롯머신 모니터는 뇌리에 몹시 강렬하게 각인되었습니다. 미국 물가에 비하면 몹시 저렴했던 고급 호텔의 부페, 무대 위에 수영장이 생겼다 사라졌다 하는 와중 사람들이 온갖 아크로바틱 묘기를 선보이던 오 쇼, 너무 뜬금없어서 웃음이 나올 지경의 각종 테마 호텔 외관도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멕시코 여행 중 만났던 미국 친구를 엘에이에서 다시 만났는데, 지금까지 미국에서 가장 좋았던 곳이 어디었냐고 물어보더군요. 라스베가스와 워싱턴 DC라고 말하니 뜻밖이라는 듯 뉴욕은 아니었냐고 되물었습니다. 이유를 잠시 생각해보면 이렇습니다. 뉴욕은 여행을 하기 전부터 이미 저에게 친숙한 도시였습니다. 저는 이미 다양한 경로를 통해 주입된 뉴욕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고, 정말 그 곳에 갔을 때 저는 영화나 Friends와 같은 드라마에서 봤던 뉴욕을 ‘재확인’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라스베가스와 워싱턴 DC는 평소에 인식하지 못했던 미국의 면모를 ‘발견’하는 곳이었습니다. 라스베가스는 오직 돈을 향한 욕망만으로 세워진 도시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돈이 돈을 만들어내는 자본의 힘을 금융업이나 대규모 장치산업에서 발견합니다. 하지만 이들 산업의 최종 소비자들은 재화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반면, 도박 산업의 소비자들이 돈을 내고 구매하는 것은 돈을 얻을 수 있는 (아주 낮은) 가능성입니다. 카지노를 밤새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서, 금을 찾으려는 열망 위에 서부 개척 및 영토 확장이 진행된 미국의 역사와 상통하는 면모도 발견합니다. 거기까지 나아가지 않더라도, 돈에 대한 욕망을 적극 옹호하는 이 도시에서 자본주의 진영의 최고 보스 미국의 ‘미국성’ 혹은 ‘미국적임’을 느끼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 같습니다. 한편, 워싱턴 DC는 세계 평화와 질서의 수호자 역할을 자처하는 큰 형 역할의 미국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느끼게 해주는 곳이었습니다. 워싱턴몰을 가득 채운 기념관, 박물관은 미국 역사의 매 순간에 자유, 정의와 같이 미국과 인류가 자랑스러워하는 가치가 배경에 있었다고 끊임없이 반복 설명합니다. 어쩌면 그러한 설명이 사실은 자국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한 추잡한 변명일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러한 변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국가나 이익 집단이 대부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미국이라는 나라가 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엄청난 고민과 논의가 존재한다는 점만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겨우 홀깃 엿보는 수준입니다만, 미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친숙한 나라이기에 여행하는 재미가 있는 곳이네요. 잠시 미국에서의 여정 정리를 해보면, 시애틀에서 캐나다로 넘어가 밴쿠버를 잠시 다녀온 후, 로스엔젤레스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로스엔젤레스에서 라스베가스, 그랜드캐년를 본 후 다시 LA로 컴백, 지금은 여행의 마지막 도시 샌프란시스코로 향하고 있는 길입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이번 여행에 이제 끝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