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 미처 알지못했던 세계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볼리비아, 페루, 에콰도르의 여섯개 나라를 둘러본 남미 여행이 끝났습니다.(*지금 머물고 있는 멕시코는 Central America로 많이들 부르니 다음 챕터에서 다시 다룰게요!)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장소이기도 하고, 그만큼 저를 매혹시키고 새로운 것을 배우게 한 곳입니다.

남미 여행의 키워드를 딱 둘로 정의하자면 ‘자연의 위대함’과 ‘인간의 위대함’입니다. 딱 둘로 구분하긴 어렵지만 남쪽에 있는 세 나라 –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에서는 ‘자연’을, 북쪽에 있었던 볼리비아, 페루, 에콰도르에서는 ‘인간’에 대해 더 많이 느끼고 고민했던 시간을 보냈습니다.

# 자연의 위대함

‘와 물이다’사진을 기억하시는지요? 이구아수 폭포에서 콸콸콸콸콸 떨어지는 물을 보고 떡 벌어진 제 입은 모레노 빙하와 토레스델파이네로 이어지는 파타고니아에 이르기까지 좀처럼 닫히지 않았습니다.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 페루 이카에서 봤던 모래언덕과 오아시스, 에콰도르에서 경험했던 적도선 실험도 미처 알지 못했던 지구의 이모저모를 알려주었습니다. 오랜 풍화와 퇴적으로 이루어진 노년기 지형에 익숙한 제 눈엔 안데스 산맥을 필두로한 ‘젊은’ 지형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활발한 지각변동이 만들어낸 뾰족한 산봉우리와 높은 고원에 자리잡은 색색깔의 호수에 홀딱 매료되었지요. 지금도 사진을 보면 “와 내가 이런곳에 갔었었지”하는 감탄사가 절로 내뱉어집니다. 그 중에서도 토레스델파이네 트래킹에서 가도가도 끝나지 않을것 같던 들판을 걸으며 느꼈던 나라는 존재의 미약함은 무엇보다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날 찍었던 거센 바람에 드러누워있는 들판의 풀 사진을 보면 지금도 마음에 바람이 쐥 하고 지나가는 느낌입니다.

# 인간의 위대함

제가 임의로 구분한 전자의 세 나라와 후자의 세 나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원주민의 비율입니다. 남미 국가 중 원주민의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볼리비아, 그 다음이 에콰도르라고 합니다. 파타고니아 등 남쪽 지방보다 페루 등이 위치한 고산지대에서 남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인구밀도가 더 높았던 탓에, 이들 나라에는 마추픽추와 같은 잉카 문명 및 나스카 등 잉카 이전 문명까지 신비로운 고대 문명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에스파냐의 군대가 이곳을 휩쓸고 난 후 남미의 각국은 유럽인의 혈통, 카톨릭의 영향이 더해진 새로운 문화를 탄생시켰습니다. 마추픽추를 건설할만큼 고도의 과학기술을 지녔던 문명이 존재했던 곳, 그 문명이 세운 빈틈없는 석축위에 바로크풍의 교회가 세워진 곳, 20세기까지 철저한 인종 분리를 시행했던 북미(미국)와 달리 메스티소나 물라토같은 다양한 혼혈을 탄생시킨 곳, 길게 머리를 땋고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치마를 입은 예수상과 화려한 드레스로 치장한 마리아상 앞에서 기도를 하는 곳. 제게 남미는 이렇게 혼종성과 퓨전이라는 키워드로 기억됩니다. 한편 브라질에서 많은 수를 차지하는 아프리카계 사람들,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높은 백인 비율은 수백년 전 자의로, 타의로 수개월동안 대서양을 건너 남미라는 새로운 땅에 정착한 이민자들에 대한 상상에 빠지게합니다. 비행기도, 카카오톡도 없던 시절, 살아서 다시는 못 볼 고향을 등지고 수만km 떨어진 신대륙으로 건너와 살게 된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어쩌면 이 챕터의 이름은 인간의 ‘위대함’보다는 ‘지독함’이나 ‘징함’이 더 어울릴지 모르겠습니다.

# 그 밖의 자잘한 이야기

그 외 제가 남미를 기억할 때 떠올리게 될 키워드를 두서없이 꼽아봅니다.

우선 ‘버스’!! 정말 징하게 탔습니다. 남미 내 항공이동을 했던 브라질 레시페-상파울루 구간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엘칼라파테, 우슈아이아-바릴로체, 이스터섬 왕복, 이를 제외하고는 전부 버스를 탔습니다. 가장 호화로웠던 버스여행은 이구아수를 보고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의 구간으로 유일하게 좌석이 180도 젖혀지는 ‘토탈까마’를 탔지요. 아타까마와 키토를 갈 때 앉았던 2층 제일 앞자리 파노라마석은 눈이 가장 호사스러웠던 자리, 쿠스코에서 나스카에 갈때 탔던 버스는 꼬불꼬불한 산길 때문에 가장 토나왔던 여행, 단구간 이동을 할 때마다 터미널도 아닌 시골길에서 사람들이 자꾸 타고내려서 언제 내려야 하나 불안해하며 눈치를 잔뜩 봤던 기억도 많이납니다. 그렇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뭐니뭐니해도 라파스에 입성할 때 버스에서 내려 짐을지고 3시간을 걸어야 했던 일… 아 이 날은 생각만 해도 다시 눙물이 방울방울ㅠㅠ

그리고 ‘환전’!! 암환전율이 높은 아르헨티나에서 조금이라도 좋은 환율로 환전을 하기 위해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녔지요. 칠레에서 칠레페소를 뽑아 미달러로 환전한 다음 다시 아르헨티나 페소로 환전하기도 했고, 우슈아이아에서는 인터넷에 나오는 옷가게 한국인 사장님이 환율을 잘 쳐주신다는 말을 보고 갔다가 민망하게 거절당하기도 했고 등등.

‘찬물샤워’!! 볼리비아와 페루에서는 숙소가격이 저렴한 대신 시설이 허름한 곳이 많아서 운이 안좋으면 차가운 샤워를 감수해야 할 때가 많았습니다. 사실 저는 대개는 찬물샤워 대신 그냥 더러워지는 길을 택했지요… 시베리아횡단열차에서 저를 구원했던 드라이샴푸는 이곳에서도 계속해서 유용히 썼습니다 허허.

‘맛있는 음식들’!! 아르헨티나의 훌륭하고 값싼 스테이크나 피자는 익히 여러번 언급했었고, 페루, 볼리비아 음식들은 가격도 저렴하면서 제 입맛에 쏙 맞아서 아주 즐겁게 여행을 했지요. 또 남미 숙소에는 호스텔일지라도 아침식사가 거의 포함되어 있습니다. 브라질 숙소에는 빵사이에 햄과 치즈를 넣고 통째로 토스트할 수 있는 기계가 늘 있어서 든든한 아침을 먹고 다녔습니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둘체데레체’라는 정말 맛있는 카라멜을 버터와 함께 빵에 발라먹는데 국내도입이 시급합니다!

#다음에 이곳에 온다면

발파라이소와 이슬라네그라에서 파블로네루다의 향기를 맡고 가겠다
아레키파, 수크레, 산타크루즈 등 같은 볼리비아와 페루의 식민지풍 도시를 가겠다
아르헨티나에서 탱고를 좀 더 본격 배워보겠다- 호스텔의 한 시간짜리 무료수업 말고…
에콰도르에서 갈라파고스를 다녀오겠다
브라질이나 볼리비아에서 아마존 정글을 다녀오겠다
우기의 우유니를 가겠다
파타고니아에서 캠핑을 해보겠다

#여행경비와 체류기간(과 과소비에 대한 변명) – 75일간의 남미여행 경비는 816만원이 들었습니다.

유럽->남미 대륙간 이동 65만원 (함부르크-레시피)
브라질 9일 101만원 (첫 남미국가라 겁먹은탓에 초반에 가성비 떨어지는 비싼숙소 이용, 레시페-상파울루 간 항공이동 포함, 치안 불안으로 잦은 택시이동, 전반적으로 물가 비쌈)
아르헨티나(+우루과이)+칠레안파타고니아 24일 265만원 (부에노스아이레스-엘칼라파테 및 우슈아이아-바릴로체 항공이동 포함, 후덜덜한 또레스델파이네 트래킹 경비, 아르헨티나에서의 잦은 육식?!?)
칠레 12일 208만원 (이 중 이스터섬 왕복 비용이 약 100만원… 그 외 산티아고에서 한인타운 발견하고 급흥분하여 한식과식?!?)
볼리비아 8일 24만원 (초 저렴하게 여행한것 같지만 3일간의 우유니 투어는 칠레 경비에 포함된것이 함정)
페루 13일 132만원 (리마에서 급 사치심 발동하여 호텔 투숙, 알파카 등 기념품 과소비)
에콰도르 3일 21만원 (택시비 바가지?!?, 사치심 계속되어 호텔 투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