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만에 떠나는 유럽여행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향하는 비행기표를 내 돈으로 살 수 있을만큼 컸을 때부터 여행을 좋아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첫 회사에 입사하기 전 시간이 비었을 때, 얼마 안되는 저연차 사원의 휴가를 끌어모아서, 퇴사하고 인생을 바꿔보겠다고 발버둥쳤을 때, 미국 유학을 결정하고 입국 허가가 난 직후부터 입학 전까지 시간이 남았을 때, 삶에서 루틴을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 일주일 넘게 생겼을 때 했던 결정은 늘 여행이었다. 세상은 넓고 나는 너무나 작아서, 틈이 날 때마다 유럽과 아시아와 미대륙을 아무리 돌아다녀도 아직도 또 돌아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내가 낯선 곳으로 떠나는 일주일 이상의 긴 여행을 그만두게 된 것은 미국에 살게 되면서 부터다. 외국인으로 외국에 사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대부분의 긴 휴가는 고국을 방문하는 데 쓰이게 된다. 나 역시 미국 국내여행과 4박5일 간 다녀온 신혼여행을 제외하고는, 한국의 부모님댁에서 대부분의 휴가철을 보냈다. 아이가 생기고 미국 내 체류 신분이 바뀌는 시기를 보내며 한국으로의 여행도 점점 기회를 찾기 쉽지 않아졌다. 

2025년이 밝은지 얼마 안 되었을 때쯤, 시부모님께서 과감한 제안을 하셨다. 6-7월 중 이탈리아 알프스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데 우리 세 가족이 유럽에 와서 함께 여행을 하는게 어떻겠냐는 말씀이었다. 그 때 우리 부부는 영주권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 여러모로 심란한 상태에 있었고, 신분 문제가 결론이 나기 전에 출입국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일단 답변을 보류했다. 만 3세 어린이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3대가 함께 하는 여행을 2주 넘게 간다고? 이런 여행의 디테일은 뒷전이었다.

2월, 미국 이민국과의 피말리는 서류 전쟁이 끝나고 영주권이 나왔다. 우리에게는 미국 국경을 넘어도 다시 집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는 문자 그대로의 (그린)카드가 생겼다. 그러니 미국이 아닌 곳으로 떠나야만 했다.

그렇게 이번 여행은 결정되었다. 가자, 유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