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나라의대학원생

옛날 일기를 뒤적거리는 금요일 밤. 오늘 따라 회사 생활 할 때 남겨놓은 깨알같은 기록들이 너무 재밌다.  그리 특별하지 않아보여도 지금의 생활을 조금 더 많이 기록해 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 학기가 지나면 코스웍이 다 끝난다. 이제 수업 들을일 없어서 홀가분하면서도, full-time researcher의 생활을 과연 어떻게 해 나가야 하나 걱정도 있었는데, 운좋게 지난주부터 이번 학기에 수업을 들었던 교수님과 함께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다. 나는 교수님이 내준 첫 숙제를 빠득빠득 끝까지 해간 덕분에 연구 조교 자리를 얻게 되었다. 교수님은 솔루션을 쓰다보니 자기가 이렇게 어려운 숙제를 낸 줄 몰랐는데, 그걸 또 한 애가 있어서 놀랐다고 했다. 이번 학기 내내 주구장창 수업만 빡세게 듣다가 연구 모드로 제 때 전환 못하면 어쩌지 솔직히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그래도 어떻게 이렇게 길이 열린다. 교수님이 우리 동기들 사이에서 인기가 꽤 많은 편이라 친구들이 어떻게 RA 구했냐고 물어오는데, 교수님이 나한테 하겠냐고 먼저 물어봤어 라고 대답하면서 입 째지는 뿌듯함을 느꼈다. (역설적으로 이 정도 자기 자랑을 하며 내가 이렇게나 큰 기쁨을 느낀걸 보면, 평소 생활에 긍정적 feedback이 얼마나 없는가 잘 드러난다. 눙물…)

모든 실증 연구가 그렇듯 프로젝트의 시작은 따분하기 짝이 없는 데이터 정리작업이다. 데이터 셋 A와 B를 연결고리 c를 이용해 연결하는 작업을 하는데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나는 교수님에게 메일을 보내 A와 B가 1-1 매핑이 안되는데 어떻게 할깝쇼 질문을 했다. 교수님은 c와 B를 연결하는 작업을 했던 공동저자들에게 메일을 보내 c와 B의 매핑이 어떻게 되냐고 물었다. 그런데 문제는 c와 B 사이의 연결이 아니고 A와 c 사이 때문에 발생한 거라, 코오thㅓ 단체 어리둥절행 사태가 벌어졌다. 우리 교수님은 B와 c 매핑 작업이 제대로 안된게 아닌지 확인해보자며 작업한 코드를 내놓으라고 했다. 코드는 아주 잘 작동했다.

이런 내용의 메일이 두시간쯤 오갔을 때 쯤 나는 문제가 A와 c 사이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대학원생으로 살다보면 누구나 한번쯤 이런 고민에 빠진다. 우리 교수가 도무지 틀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나는 어떻게 이 상황을 타개해야 하는가?

심지어 나는 메일 쓰레드의 수신인들이 누구인지도 몰랐다. first name 으로 어렴풋이 짐작은 했지만, 나는 이 프로젝트의 코오thㅓ가 몇명인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지극히 한국인스러운 선택을 했다. 그래, 교수님에게 개인적으로 메일을 보내서, 교수님 A와 c가 문제인것 같습니다 라고 공손하게 지적해 드리자!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 앞에서 우리 교수를 망신줄 수 없지! 그리고 쫄려서 열번쯤 더블체크를 이미 해봤지만 내가 틀릴수도 있는 노릇이잖아?!

다음날 교수님과 미팅이 있었고 교수님은 나에게 슬며시 웃으며 말했다. 민지야, 메일 오갈때 뛰어들어서 편하게 얘기해라. 내가 틀렸다고 해도 돼.

대학원생 셋이 모이면 지도 교수님 개똥 치우는 소리(…믿기지 않겠지만 측근으로부터 들은 실화입니다) 나오는 나라에서 온 유학생은, 바다 건너 대륙에 와 교수님 이름도 제대로 못 불러서 바들거린다. 교수님 이름이 문정혁이라면(예시) 혁아 라고 불러도 되는거 머리로는 네 잘 압니다 잘 아는데요…. 그래도 적어도 이메일은 안녕 혁아, 라고 시작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많이 나아졌다.

이상한 나라에서 온 외국인이 잔뜩 틀린 영어로 하는 주장도 귀담아 들어주시는 교수님 감사하다. 말은 잘 못해도 열심히 할게요. 지금 이 글 남긴 시간이 나의 JJS을 증명한다규… 그러니 교수님 부디 내 어드바이죠가 되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