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된 불편함

(지난편에 이어) 그러나 미국 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불편함의 끝판왕은 DMV(Department of Motor Vehicles)에 가야 느낄수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서울에서 차없이 오래 산 탓에, 이곳에서도 크게 운전의 필요성은 못 느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아야 하겠다고 생각한 건 수업 마치고 동기들이랑 맥주 한 잔 마시자고 여권을 챙기는 일이 너무나도 번거롭기 때문이었습니다. 술 마시다가 실수로 여권을 잃어 버리기 라도 하면, 비자 재발급을 포함하여 여러가지 골치 아픈 일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분실 걱정 없이 미국 내에서 간편하게 들고다닐 수 있는 신분증이 필요했지요. 마침 제가 적을 두고 있는 버지니아 주는 한국과 운전면허 교환 협정을 맺은 곳이라, 간단한 시력 검사 정도만 받으면 별도의 시험 없이 면허를 받을 수 있기도 했구요.

그런데 애니메이션 주토피아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미국의 DMV는 비효율적 공공부문의 대명사입니다. 구글에서 리뷰를 보면 “내가 별점을 0개를 못줘서 1개를 주는게 한이다”는 말이 잔뜩이고, 줄을 서느라 몇 시간을 기다렸는데 소소한 서류 미비를 빌미로 발급이 거부된 사례도 풍문으로 많이 전해들었습니다. 마음을 굳게 먹고 있는 서류 없는 서류를 다 긁어모아 만반의 채비를 갖춘 후 DMV에 갔습니다. 번호표 뽑는 줄만 이십여분에, 제 번호 차례가 오기까지 두시간을 더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제 차례가 돌아오고, 저는 두툼한 서류 뭉치를 내밀었습니다. 서류를 들고 사라진 직원은 삼십여분 후 나타나서, “운전면허 교환 신청을 위한 등록을 해 두었으니, 교환 신청 허가가 났다는 편지가 집에 도착하면 그 편지를 가지고 다시 와서 신청을 하면 된다”는 박근혜 연설문급 수수께끼같은 말을 했습니다. “편지로 면허증을 보내준다는 말씀인가요”하고 다시 물어보니, 그는 “그게 아니라 편지와 함께 이 서류를 모두 가지고 와서 다시 신청을 하는게 절차라고요” 퉁명스럽게 대답하며, 매몰차게 다음 번호 대기자를 부르는 벨을 눌렀습니다.

그리고 한참동안이나 dmv에서는 소식이 없었습니다. 저는 직원이 멍청해서 잘못된 절차를 안내했음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화를 내다가, 학기가 점점 바빠지는 탓에 반포기, 반망각 상태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dmv 방문으로부터 한달이 지난 어느날, 정말로 편지가 왔습니다. “축하해, 너의 한국 면허증 교환 신청 허가가 났으니 필요한 서류를 가지고 와서 다시 신청을 하렴. (그렇지만 신청을 한다고 다 받아주는건 아니야.) 그리고 다음주까지 안하면 이 편지는 효력을 다하니까, 너는 다시 저번에 했던 교환신청등록을 하러 dmv에 와서 무한루프를 타야해”라는 내용의 편지가요.

일처리를 못했다고 속으로 욕했던 직원에게 사과하고, 애지중지 모아놓은 서류를 챙겨 다시 dmv에 갔습니다. 번호표를 받고, 영영 멈춘것만 같은 시간을 견뎌 다시 차례가 왔습니다. 서류뭉치를 전해받은 직원은 전에 다 검토해놓은 줄 알았던 서류를 다시 스캔한다며 자리를 비웠습니다. 한참후 돌아온 직원은 저를 또 한번 아연실색케 했습니다. “이제 신청은 다 했어. 너의 이민 신분을 확인해서 문제가 없으면 발급이 될건데, 그게 얼마나 오래 걸릴지는 나도 몰라. 어떤 사람들은 두시간 기다리다가 못받기도 해. 그게 싫으면 그냥 집에 가도 돼. 다음에 다시 와서 신청할 수 있어.”

이 사람들은 도대체 제게 편지를 보내주기 전까지 한달동안 뭘 했던 걸까요? 우리나라였으면 진작에 인터넷으로 발급 받고 남았을 일일거 같다는 생각에 짜증이 치밀어 올랐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민원24 사이트도 만만찮게 괴롭지만요…) 포기하지 않고 창구 바로 앞 좌석에 앉아 우주의 기운을 모아 직원을 째려본 끝에, 결국은 임시 면허증을 손에 얻었습니다. 우편으로 플라스틱 카드가 도착하기 까지는 또 열흘이 걸렸지만요. 그날 오후에 학교에 가서 “나 오늘 세시간 반 걸려서 면허증 받았어!” 라고 얘기하니, 인터내셔널 친구들은 “왓?? 세시간 반?!! 미쳤다!!”라며 놀라는 반면, 미국 친구들은 “그정도면 뭐 괜찮네”라는 상반된 반응을 보여 재밌었네요.

고진감래라고, 이제는 미국에서 운전도 할 수 있고, 술집에서 하는 신분증 검사도 더이상 두렵지 않습니다. 그래도 혹시라도 이 과정을 또 거쳐야 한다 생각하면 눈 앞이 아찔해지니, 절대 잃어버리지 말고 애지중지 잘 보관해야 할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