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불편함

요즈음 저는 여러모로 편안하고 그닥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마트에서 삼겹살같은 비쥬얼의 베이컨을 잔뜩 판다거나, 공인인증서, 아이핀 같은 귀찮은 시스템 없이 인터넷 쇼핑, 온라인 뱅킹을 이용할 수 있는 점 등은 한국보다 훨씬 낫습니다. 다만, 오기 전에는 생각도 못했던 뜻밖의 불편함들이 있어 이 글에서 몇 가지 언급해볼까 합니다.

이곳에 와서 생긴 생활의 변화 중 하나는 무지 많은 열쇠를 들고다니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한국에 있을 때에는 거의 모든 생활공간의 잠금장치가 디지털락이었던 덕분에 근 10년 동안에는 거의 열쇠를 사용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최근에는 다시 아날로그식 열쇠 생활로 돌아갔습니다. 관광지 기념품샵에서 대체 요즘 누가 열쇠를 쓴다고 아직도 열쇠고리를 파는건가 의아해 했는데, 그런 제가 누군가로부터 여행기념 선물로 받은 열쇠고리겸 지갑을 아주 유용하게 쓰고 있습니다.20160919_230123

또다른 아날로그적 향취는 학교 체육관에서 느꼈습니다. 그룹활동 회원카드를 종이에 글씨로 쓴 후 코팅을 해주더군요. 코팅지 사이에 카드를 끼우고 빙글빙글 손잡이를 돌려 롤을 통과시키면 압력에 의해 코팅이 되는 기계로 카드를 만들어 줬는데, 중학생 때 신화 사진 코팅하던 시절 이후 십수년만에 처음 본 광경이었습니다. 심지어 전자로 기록을 남기지도 않아서 코팅된 카드를 잃어버리면 그냥 끝이라고 하더군요…

개인 수표를 이용한 거래는 100년전에 쓰여진 소설에서나 일어나는 일인줄 알았는데, 미국에서는 지금도 수표가 빈번히 결제 방식으로 사용됩니다. 보통 보증금 지불 용도로 수표를 많이 요구받는데, 저는 집세를 낼 때, 아파트에서 자전거 주차공간을 배정받을 때, 도서관 사물함을 신청할 때 써 봤습니다. 아직까지는 수표 쓰는법이 낯설어서 늘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봅니다. 봄에 있었던 학교 방문 후 여행경비 환급을 받을 때에는 반대로 수표의 수취인이 되었는데, ATM기계에서 입금도 되어서 신기방기하더군요. 우리나라였다면 계좌이체나 카드결제로 해결했을 부분인데, 돈 거래에 관한 인식 차이가 드러나는 지점이라 불편하면서도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워낙 서울의 대중교통 시스템이 잘 되어있다보니, 이곳은 지하철과 버스가 미국 기준으로는 꽤나 잘 되어 있는 편인데도 만족하기가 쉽지 않네요. 디씨의 지하철은 워낙 오래된 탓에 주말마다 노선별로 수리를 진행합니다. 그러다보니 부정기적으로 운행을 하지 않거나 터무니없이 배차 간격이 벌어집니다. 그래도 지하철은 그나마 양반입니다. 버스는 배차 간격 관리도 전혀 되지 않고, 버스 전용도로 따위도 없기 때문에, 교통 정체가 심할 때에는 버스를 기다리기 답답해서 그냥 목적지까지 걸어가게 되곤 합니다.

그러나 미국 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불편함의 끝판왕은 DMV(Department of Motor Vehicles)에 가야 느낄수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다음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