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떠올리는 북유럽 – 영화 카모메 식당

얼마전부터 핸드드립 커피를 내려먹기 시작했습니다. 커피잔 모양의 깔때기에 필터를 씌우고, 원두 위에 물을 부으려는 찰나, 예전에 영화에서 봤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자우림의 김윤아를 닮은 여자 주인공이, 커피에 물을 따르기 직전에 원두 가루를 콕 찌르며 ‘코피 루왁’이라고 속삭이던, 영화 ‘카모메 식당’입니다.

이 영화는 핀란드를 배경으로 한 일본 영화입니다. 헬싱키의 작은 레스토랑 ‘카모메 식당’에, 이 식당을 운영하는 일본 여인 사치에(사진)와 뚜렷한 이유 없이 이 도시로 모여든 또 다른 일본 여인 두 명, 남편에게 버림받고 알코올 중독에 빠진 핀란드 여인,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핀란드 청년 등이 찾아오면서 이야기는 진행됩니다. 영화는 화려한 볼거리는 없어도 담백하고 소박한 멋이 있는 핀란드의 분위기를 닮았습니다. 저는 헬싱키를 북유럽 일정에 넣을까 말까 고민하다, 이 영화를 보고 가야겠다고 결정했었는데, 영화평론가 이동진씨도 이 영화를 “영화가 끝나고 나면 핀란드행 비행기 표를 끊고 싶어진다.”고 표현했더군요. 이 영화가 일본 인디 영화계에서 유례없이 성공한 탓에 핀란드가 일본인들 사이에서 인기있는 여행지가 된걸까요, 아니면 제가 본 북유럽 가이드북이 일본 가이드북을 베껴써서 저도 모르게 일본인들을 졸졸 따라다니게 됐던 걸까요? 어쨌든 헬싱키는 유난히 일본인 여행객들이 많이 눈에 띈 곳이었습니다*. 조용하고 깨끗한 헬싱키의 길거리 느낌은 일본/일본인들의 전반적인 인상과 비슷하기도 했습니다. 각각 아시아 대륙의 왼쪽 끝과 오른쪽 끝에 멀리 떨어져 위치한 두 나라가 사뭇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온다는 점이 참 신기했습니다.
(*참고로 여행 중 가장 일본인들을 많이 봤던 여행지는 페루의 마추픽추와 칠레의 이스터섬이었습니다. 미스테리한 유적을 좋아하나 봅니다.)

저는 사실 시끄럽고 북적이고 활기찬 여행지를 선호하는 편이지만, 잔뜩 맘졸이며 겁먹고 돌아다녔던 러시아에서 벗어나 핀란드에 넘어왔을 때에는 절로 마음이 말랑말랑하고 차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영화 카모메식당의 영상을 찾아보면서, 전차를 타고 작은 헬싱키 도심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던 기억을 떠올려봅니다.서울은 전차가 다니기에는 너무 빨리 움직이는 도시여서일까요? 버스나 지하철과 달리, 전차가 있는 도시는 아날로그적 감수성이 더해져 특별하게 추억됩니다. 소박한 이미지와 달리, 여행 후 정산을 해 보면 어마어마하게 지출이 발생한다는 반전이 있기에, 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이 되었다는 점은 너무나도 슬프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