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벨리즈 입국기

본문이해를 돕기 위한 지도 링크 먼저. efvfM

벨리즈라는 나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코주멜에서 다이빙을 배울 때의 일이었습니다. 호스텔에서 다른 여행자들에게 어느 곳을 여행 중이냐고 물어보면 여정 중에 어김없이 들어 있던 나라 벨리즈! 중미를 여행하는 여행자들은 빼먹지 않고 이곳을 들르는 것 같길래 어떤 곳인가 검색을 해 보았더니, 그 유명한 그레이트 블루홀이 있는 바로 그 나라가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벨리즈 가까이까지 와서 안 들르고 가면 아쉽지 않냐고 저를 유혹하길래, 그럼 칸쿤에 가서 비자를 받아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지요.

그리하여 바야흐로 칸쿤에 입성, 찌는듯한 무더위를 뚫고 칸쿤의 벨리즈 영사관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어라? 주소는 분명 맞게 찾아갔건만 미용실이 뙇 들어서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머리할래, 네일할래, 친절한 미소를 보내는 미용실 언니를 뒤로 하고 다시 검색에 돌입했습니다. 웹페이지를 뒤적이다보니 영국 영사관에서도 업무를 처리해준다고 되어 있길래 영국 영사관으로 향했지요. 땀을 좔좔 흘리며 영사관을 찾아갔더니 멕시코 경비 아저씨들이 “오늘은 공휴일이니까 내일와~”하며 웃습니다. 월요일이라 방심하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멕시코의 국경일. 별 수 있나요 흑흑 다시 하루를 칸쿤 센트로에서 묵을 수 밖에… 삼고초려로 제갈공명을 얻은 유비의 정신으로 다음 날 다시 영국 영사관으로 향합니다. 칸쿤의 으리으리한 호텔존 한가운데에 위치한 영사관이라, 최상의 근무지일세 생각하며 직원에게 벨리즈 비자발급 요청을 했습니다. 호잉 그런데 이제 영국영사관에서 비자대행 업무를 안한지 오래되었다며 멕시코의 벨리즈 국경도시인 체투말에 벨리즈 영사관이 있으니 그곳에서 신청하라는 대답이 돌아오는군요. 그러나 이미 세 번이나 비자발급 시도에서 물을 먹은 저는 정이 떨어져 벨리즈고 뭐고 모든게 귀찮아진 상태! 일단 판단 보류하고 이슬라 무헤레스로 이동을 했습니다.

그 와중에 제가 중미에서 여행지로 염두를 두고 있던 멕시코 인접 국가에는 쿠바도 있었습니다. 인터넷도 전혀 안되고 미국은행 발급 신용카드는 사용이 안된다길래 마음에 걸려 고민만 하고 있었지요. 쿠바를 간다면 멕시코 중부를 건너뛰고 항공으로 아바나에서 멕시코시티까지 곧장 이동할 작정이었는데, 여행자들이 다들 중부에 있는 치아파스나 오아하까가 너무나도 아름답다고 이구동성이어서 마음이 흔들렸지요. 그래서 쿠바, 벨리즈 모두 다 때려치우고 멕시코나 더 잘보자는 생각을 하며 칸쿤에서 4시간정도 차로 떨어진 멕시코 유카탄 주의 메리다라는 도시로 향했습니다. 메리다에서는 굉장히 사교적인 분위기의 호스텔에서 묵으면서 꽤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는데, 세노테(동굴) 다이빙을 할 수 있는 곳은 전 세계에 거의 없으므로 꼭 해보라는 말에 또다시 부화뇌동,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다시 툴룸으로 가기로 결정합니다. 지도를 보며 중부로 육로이동을 하려면 다시 메리다 쪽으로 돌아와야 하는건가 지도를 보며 고민에 잠겨있던 그 때, 호스텔의 스텝이 조언을 해줍니다. “메리다까지 다시 올 필요없이 체투말을 거쳐서 가면 돼!” 네, 벨리즈 영사관이 있다던 바로 그 체투말 말입니다

툴룸에서 며칠을 보내면서 생각해보니 결국은 여차저차 벨리즈 국경까지 가게 된김에 방문을 시도해봐도 나쁠 것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체투말에서 차로 30분가량 떨어진 작은 마을 바깔라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오전 콜렉티보 택시(합승 택시)를 타고 벨리즈 영사관까지도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비자를 받고, 점심을 먹고, 매일 오후 세 시에 하루에 한 대씩 있는 페리를 타고 벨리즈에 들어가면 딱 맞겠군 후훗- 생각하는데 문에 쪽지 하나가 덜렁 붙어있네요. “I will be back at 13:00”. Aㅏ~ 벨리즈에 갈 것인가 말 것인가 다시 한 번 고민에 빠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일단 황량한 시골 마을에서 거북이같은 배낭을 들쳐메고 공중전화를 찾았습니다. 기계가 한참이나 동전을 잡아삼킨 후에야 연결이 되었습니다. “비자 받고 오늘 바로 페리로 벨리즈까지 가고 싶은데, 1시에도 가능해요?” 질 나쁜 공중전화와 질 나쁜 영어실력으로 의사소통이 쉽지 않았지만, 긍정적인 대답인 듯 느껴져 “아 그러니까 된다는 거지요?”되묻는 순간 전화가 똑 끊어집니다. 에잇 된다는 말이겠지, 좋게 생각하며 근처의 기다릴만한 곳을 찾아 다시 헤맸습니다.

마침 길 건너로 벨리스영사관 입구가 보이는 타코집을 찾아내 동네 꼬마들의 호기심어린 눈빛을 받아가며 시간을 때웠습니다. 12시 30분쯤 되었을 때 누군가가 영사관으로 들어가는게 보이길래 냉큼 찾아가보니, 아저씨 한 분이 들어오라고 손을 흔들어 주시네요. 아침에 전화했던 사람이에요 헤헤, 웃으며 여권을 내밉니다. 900페소나 되는 비자발급비를 내야하긴 했지만, 그래도  기분좋게 여권에 비자 스티커를 붙이고 페리 선착장으로 향했습니다. 결국은 벨리즈에 가는구나 하는 생각에 기분좋게 맥주도 한 캔 마시고, 일본 아저씨들과 말동무도 해주며 배를 기다렸습니다. 탑승시간이 다 되어 배를 타러 가는데, 다들 가방 내려놓고 줄을 서라더니 총을 든 군인 아저씨와 시커먼 마약탐지견이 등장합니다. 한시간이 가깝도록 가방검사를 샅샅이 하고서야 겨우 벨리즈행 페리에 탑승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향한 곳은 벨리즈의 작은 섬 키코커. 중간에 산페드로라는 근처의 큰 섬에 들러 입국심사를 받고, 보다 작은 배로 갈아탄 후 항해가 계속됩니다. 산페드로에서 키코커까지, 깜깜한 바다를 불도 안켜진 작은 배를 타고 건넜습니다. 살아서 땅에 발을 디디는구나 안도하며 숙소를 찾아 헤매기 시작. 비자를 못 받아 멕시코의 다른 도시로 향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숙소를 예약 안 하고 왔더니 섬에 도착해서도 쉴 새가 없네요. 처음 염두에 두었던 숙소는 방이 없다길래 이리저리 호객꾼을 따라 이동하다가 1박에 10달러짜리 적당한 숙소를 찾아냅니다. 길고 피곤했던 하루는 한접시에 12달러 밖에 안하는 랍스터(!!!)로 마무리했습니다.

넵, 그래서 결론은 저는 지난 몇주간의 우여곡절 끝에 벨리즈의 키코커 섬에 와 있습니다. 스페인어권에 오래 있다가 영어권 국가로 이동했더니 좀처럼 적응이 안됩니다. 불쑥 불쑥 ‘그라시아스!’가 튀어나오려는 것을 억누르고 ‘그ㄹ…땡큐!’라고 대답하게 되네요. 멕시코에서 배로 2시간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건만, 사람들의 피부색이나 생김새도 완연히 다릅니다.대개의  멕시코 사람들이 인디오와 백인 혼혈의 갈색 피부를 갖고 있다면, 벨리즈 사람들은 훨씬 더 아프리카계에 가까운 검은 피부를 갖고 있습니다. 모두가 아주 천천히 움직이는 이 곳에서 캐러비안의 느긋함과 따뜻한 햇살을 마지막으로 만끽합니다.

2013-12-04 10.53.50

사실… 사진으론 다 비슷해보이네요 ㅋㅋ 한달동안 계속 똑같은 곳 사진만 올리는 느낌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