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쿤에서 진지드시는 이야기

마이클 센델 교수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라는 책은 돈으로 거래되어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시작합니다. 센델 교수는 장기 이식이 필요한 환자를 위한 장기 거래, 불임 커플을 위해 정자나 난자를 매매하는 행위, 대리시험(돈을 받고 대신 시험을 쳐 주는 서비스) 등 가상의, 혹은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수십 가지 종류의  ‘재화 및 서비스’를 예를 들어 우리의 가치관을 시험합니다. 생명권과 같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이므로,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기 위해서 등의 이유를 들어 쉽게 대답할 수 있는 것들도 있지만, 어떤 것들은 선뜻 대답하기엔 머리속이 알쏭달쏭합니다. 책에 실려 있었다면 대답하기 어려웠을 것 같은 서비스에는 이것도 포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에메랄드 빛 칸쿤의 해변에 자유롭게 출입하여 해수욕을 즐길 권리’ 말입니다.

cancunn

칸쿤 지도입니다. Nichupte라고 써 있는 라군(우리말로는 석호인가요?) 옆에 주황색 아이콘으로 졸조롬 표시된 부분이 호텔입니다. 저 부근을 ‘호텔 존’이라고 부르는데, 실제로 거대한 호텔 건물에 가려 바닷가는 코빼기도 안 보입니다. 창 밖으로 파란 캐러비안해와 백사장이 펼쳐져 있는 방에 묵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지만 해변가에 있는 숙소는 어마어마하게 비싼 5성급 호텔 아니면 올인클루시브리조트라 저같은 거지 배낭여행객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입니다. 수십명의 경비아저씨가 곳곳에 포진하여 사람 기를 죽이는 로비를 통과하면, 바다 전망의 아름다운 풀장을 거쳐 호텔 관리하의 프라이빗 비치클럽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저는 괜히 기가 죽어 로비를 당당하게 통과하지는 못했고, 대신 거대한 호텔 건물을 빙빙 둘러 대중에게 공개되어 있는 좁은 구역을 통해 바닷가로 나아갔습니다. 바닷물 위에 담을 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백사장을 걸어 호텔 앞을 지나가는 것은 괜찮습니다. 다만 저렴한 숙소는 바닷가에서 15분가량 버스를 타야 도달하는 센트로에 대부분 있고, 센트로에서 숙박하며 해수욕을 즐기기란 사실상 매우 번거로운 일이 됩니다. 바닷물에서 퐁당퐁당 재밌게 놀다 나왔는데 샤워도 못하고 찝찝하게 만원 버스를 타고 숙소까지 이동해야한다고 생각해보세요 ㅠㅠ… 그러니 비싼 숙소에서 묵을 형편이 안되면 캐러비안 해변을 코앞에 두고도 바다에서 놀기 쉽지 않은 노릇입니다.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가 비싸듯, 호텔에서도 해변 전망 룸이 더 비싼 게 당연하지 무슨 빨갱이같은 소리를 하고 있냐고 물으신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 저는 인간의 자본이 투입되지 않은 ‘자연물’에 대한 감상권이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거래되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해봤을 뿐입니다. 다만 오른쪽 날개에 계신 분들이 조금 더 공감할 수 있도록 민족주의적 관점을 적용해보면, 이 문제는 ‘빈자vs부자’의 구도에서 ‘멕시칸vs그링고'(주로 백인 외국인을 일컫는 스펜이어)의 구도로 바뀝니다. 설악산 천왕봉 바로 아래에 한국인들의 평균 소득으로는 절대 갈 수 없는 초호화 산장이 들어서서 돈많은 일본인들로 바글거리는데, 한국인들은 천왕봉에 오르려면 단단히 맘먹고 큰 지출을 하거나 텐트를 지고와서 불편하게 자야 하는, 그런 가상의 상황에 비유하면 말이 되려나 모르겠습니다.

오랜만에 진지먹다가 오바하는가 싶기도 합니다. 호텔에 가려 길에서 바다가 거의 안 보일망정, 백시장으로의 통행권이 완전히 차단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가이드 북에 의하면 해변으로 가기 위해 호텔을 통과해도 아무 문제 없다고 하네요. 호화로운 호텔, 근사한 레스토랑, 에어컨 빵빵한 쇼핑몰에 근무하는 많은 메히꼬 세뇨르, 세노라들이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온 그링고들 덕분에 생계를 유지하고 있겠지요. 그냥 저는 괜히 불편했습니다. 지구표면적의 70%가 물인데 요리조리 통로로 빠져나가 바다로 ‘입장’해야 하는 상황이, 호텔존과 센트로를 잇는 R-1 버스줄 옆으로 렌트카가 쌩쌩 달리는 광경이, 공공 통로 근처에 있는 사람들과 호텔 앞 썬베드에 있는 사람들 간의 확연한 피부색 차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