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에서 조금 덜 게으르게

캐러비안의 열대 해안에서 후덥지근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지금은 playa del carmen에서 45분가량 페리를 타고 이동해 Cozumel island의 산 미구엘 마을에 묵고 있습니다. 커다란 크루즈선이 항구에 정박하면 돈 많은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이 줄줄이 배에서 내립니다. 항구가에 즐비한 기념품 가게는 US 달러를 펑펑 쓰는 그링고(외국인을 뜻하는 스페인어)들로 가득합니다. 바닷가에서 몇블럭 벗어나면 멕시코 현지인들의 소박한 동네가 펼쳐집니다. 저같은 허름한 행색의 배낭여행객에게는 번화한 항구보다는 이 곳이 더 제격입니다.
미국에서 건너온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가 경영하는 호스텔은 아무것도 안하고 시간보내기 좋은 곳입니다. 마당에 있는 커다란 풀장에 튜브를 띄워놓고 놀기도 하고, 파파야 지붕 아래 걸려있는 해먹에 누워 덜렁거리다 낮잠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플라야델카르멘에서도 해변에 누워서 1주일을 보내놓고서 또 혼자 게으름피우기 지겹지도 않냐구요? 네, 사실 초큼 지겹습니다… 그래서 이 곳에서는 ‘조금 덜 게으르게’ 시간을 보내기로, 나를 위한 무언가를 배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2013-11-11 10.05.40 스쿠버다이빙을요!

저는 세상의 모든 운동을 못 하는 민첩성 꽝의 몸을 갖고있습니다.첫째 날에는 물에 들어가는 순간 마우스피스를 놓치고 공포에 질려 ‘다이빙은 내 인생에서 오늘이 마지막이다’ 생각했지요. 그 날 저녁 1일체험으로 끝낼까, 자격증 코스 수업을 계속할까 고민하다가, 어차피 멕시코에서 시간도 남고 할 일도 없어서 그냥 코스를 계속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두 세번 투명한 캐러비안 바다 아래를 구경하다보니 물 속에서 둥둥 떠다니며 뻐끔뻐끔 숨만 쉬면 되는 다이빙이 점점 좋아집니다. 자격증 코스다보니 즐겁게 물고기만 구경하면 되는건 아니고, 여러가지 스킬들을 연마해야합니다. 물 속에서 마스크를 벗었다가 다시 쓰거나, 공기가 없는 상황을 가정해 다른 사람의 호흡기를 빌려 물 속을 벗어나는 연습 등을 합니다. 마지막날에는 쏟아지는 비를 뚫고 호흡기 없이 수면으로 올라가는 연습을 했습니다.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고 공기를 들어마셨는데 빗물과 파도가 입 속으로 들어와 계속 물을 마시기는 했지만요… 이 모든 과정을 지도해주신 스쿠버 다이빙 선생님은 “하하호호 인생을 즐겨라” 타입의 전형적인 멕시코 아저씨입니다. 어설프게 선생님의 동작을 따라하는 저를 늘 “muy bien, senorita!(참 잘했어요, 아가씨!)”라고 격려해주셨지요. 끊임없는 농담으로 저를 웃게 만든 Victor쌤, 빅토르쌤이 감기에 걸려 대타로 출동하신 Gustav쌤, 모두모두 Muchas gracias!

4번에 걸쳐 진행된 오픈워터 다이빙 실기를 끝나고, 이제 내일 있을 필기시험만을 앞두고 있습니다. 바람이 불어서 보트가 못 뜨는 날, 괜히 다이빙 하기 싫은 날 등을 합쳐 어언 일주일을 섬에서 반빈둥 반부지런하게 보냈습니다. 오전에 부두에 가서 보트를 타고 다이빙을 하고 와서, 오후에는 풀장이나 해먹에서 시에스타를 즐겼습니다. 저녁에는 호스텔에서 묵고있는 전세계의 다이버들과 ‘오늘 본 cool한 물고기’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오픈워터 코스를 시작하고 있는 저는 완전 왕초보중의 왕초보 쪼렙 다이버고, 레스큐 코스나 다이브 마스터 코스를 밟은 사람도 심심찮게 보입니다. 이 세계에 발을 들이고 나니, 세상에 이렇게 다이빙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구나 하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됩니다.

” 한국인이 생각하는 중산층의 조건 vs 프랑스인이 생각하는 중산층의 조건”이라는 짤방을 보신 적 있으신지요? 한국인의 조건이 집, 자산 등 모두 금전적인 것이었던 반면, 프랑스인의 조건은 ‘연주할 수 있는 악기를 하나 이상 가질 것’, ‘외국어를 하나 이상 할 것’, ‘즐기는 스포츠가 하나 있을 것’ 과 같은 정성적인 조건으로 채워져 있었지요. 몇 달 동안 여행을 하며 얼마 되지도 않는 자산을 탕진하고 있는 저는 한국인의 중산층에서는 점점 멀어지고 있는게 분명합니다. 그래도 지난 일주일간 따뜻한 캐러비안 바닷물 속에서 꼬르륵거리는 동안 프랑스인의 중산층에는 한 발자국 다가간게 아닌가 정신승리를 노려봅니다. 😛

뱀발. 예전에 다니던 회사 빌딩 안에는 커다란 아쿠아리움이 있었습니다. 회사는 좋을 때보다는 싫을때가 더 많았지만, 가끔 학교 친구들에게 수족관을 보여줄 때에는 좋은 회사에 다니고 있다는 뿌듯함이 밀려왔었지요. 회사를 관두고 나서도, ‘나중에 다시 어떤 일을 하더라도 회사 안에 수족관이 있지는 않겠지’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1주일간 수족관 안에 있던 산호와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을 수족관보다 수천배 넓은 바다속에서 직접 봤습니다. 좋은 회사를 잃었지만 덕분에 더 넓은 세상에서 생각지도 못한 광경을 보고 갑니다. 아마 이제 수족관만큼은 별로 안 그리울 것 같습니다 으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