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에서 게으르게

언제쯤 한국에 들어오냐고 물어보는 분들이 가끔 계신데, 저의 귀국 예정일은 2014년 1월 27일입니다. 동생이 겨울방학을 맞고 나면 함께 미국 여행을 하고 들어올 예정이고, 12월에 미국에 입국하기 전까지 한달 반 정도 멕시코에 체류할 예정입니다. 남미여행의 막바지동안 저는 여행이 길어지면서 여행 초반의 활력을 잃어가고 있는 스스로를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내년 1월은 한참 남았는데 좀 이른 표로 살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한달 반동안 스페인어 수업과 쿠바 여행으로 멕시코 일정을 빡빡하게 짜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멕시코에 도착한 저는 하늘빛 파도가 밀려오는 하얀 백사장의 캐러비안 해변을 보자마자 마음먹었습니다. “여기선 지겨울때까지 빈둥거리며 게으르게 지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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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 녘 플라야델카르멘의 해변. 멕시코에서는 게으름이 제격입니다.

저는 지금 칸쿤에서 차로 40분쯤 떨어진 해변도시 ‘플라야델카르멘’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 곳에서 저를 바쁘게 하는 건 딱 두가지입니다. 모기, 그리고 날씨. 첫날 방심했다가 모기의 집중공격을 받은 후로, 매일 모기 퇴치제를 아침저녁으로 팔다리에 치덕치덕 바르고 있습니다. 대충 바른 부위에는 꼭 물린 자국이 남으니 이게 모기인지 귀신인지 싶습니다. 한편 이곳은 전형적인 열대기후를 보이는 곳으로, 낮에 30도를 훌쩍 넘기며 해가 쨍하다가도, 갑자기 예기치못한 소나기가 하루에도 몇 번씩 후둑후둑 내립니다. 그러다 비가 그치면 이번엔 얼른 선크림을 치덕치덕 발라야죠. 꼼꼼하게 안 바르면 햇살이 몸에 아주 선명한 그라데이션을 남깁니다. 따..딱히 지금 제 몸이 그렇다는 건 아..아닙니다…

모기퇴치제와 선크림바르는 행위를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은 선베드에 드러누워 있는데 씁니다. 누워서 전자책에 다운받은 소설을 읽다가, 바닷가에서 첨벙거리다가, 풀장에서 소금기 좀 씻어내고 다시 드러눕습니다. 근사한 리조트의 풀장 및 프라이빗비치 입장권이 제공되는 값싼 호스텔을 찾았는데, 훌륭한 가성비를 지녔음에도 이상하게 손님이 거의 없어서 6인실을 혼자 쓰고 있는 중입니다. 비가 오거나 날이 흐려서 해변가에 나가기 애매하면, 시내에 나가 아이스커피나 프로즌마가리타를 마십니다. 미국인들이 바글거리는 관광객 대상 보행가에서 한두블럭 벗어나면, 값싼 현지인대상 음식점이 가득합니다. 타꼬와 퀘사디야로 3~4천원에 가볍게 한끼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숙소 주변은 콘도가 빼곡히 들어와있는 아주 조용한 리조트 구역이라 산책하기도 좋고 밤에도 안전합니다. 한마디로 별일 안하고 아무 생각없이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기 아주 최적화된 곳이라 할 수 있지요. 원래 생각했던 스페인어 수업이나 쿠바 여행은 지금 머리속에서 지워졌고, 한동안은 유카탄 반도의 비슷한 다른 해변 마을들을 돌아다녀야지 생각중입니다.

참고로 여기엔 한국인이 정말 저 말고는 한 명도 없습니다. 일본인 관광객 한무리는 잠깐 봤네요. 길거리의 호객꾼 아저씨들이 ‘세뇨리따~ 데돈데? (From where?)’하며 말을 거는데, ‘하뽄~?'(절레절레) ‘치나~?'(절레절레)하고나면 도대체 어디서 온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필리피노~?’하고 묻더군요. 남미 다른 나라에서는 그래도 코레아가 세번째로 나오던데, 칸쿤 정도 가면 다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