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았다가 싫었다가 볼리비아 1

2박3일간의 우유니 투어동안 저의 마음은 죽끓는 변덕을 보였습니다. 패딩과 털모자로 몸을 온통 감싸고서 덜덜 떨다가, 호수와 플라멩고, 라마를 보고 와-하다가, 고산병으로 현기증이 핑 나는 숙소에서 밤을 보내다가, 하얀 소금밭을 보고 다시 와-하다가, 쓰레기더미 위에 지어진듯한 허름한 우유니 마을을 보고 실망하거나 뭐 그런 식이었지요.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즈로 향하는 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같이 우유니 투어를 했던 지프차의 미국아이들을 따라 Todo Turismo라는 회사의 야간버스를 예약했는데, 우유니에서 만난 다른 한국사람은 반값도 안되는 가격에 라파즈까지 가는 버스표를 샀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저녁과 아침, 커피와 꼬까차가 제공되고, 밤사이 따뜻한 히터가 솔솔 나오는 호화로운 고급 버스여서 아주 만족스러웠지요. 게다가 볼리비아의 도로 사정은 그리 좋지가 않은 편입니다. 구글 지도에 노란색으로 표시되는 가장 상급 도로인데도 밤새 엄청나게 울퉁불퉁한 노면이 그대로 느껴져, 그나마 좋은 버스를 타기 잘했다고 생각했지요.

아침이 되어 라파스에 도착할 무렵, 갑자기 버스 직원이 나타나 승객들에게 안내를 합니다. “지금 라파스로 향하는 길이 시위대로 인해 막혀 있습니다. 일단 다른 루트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좋은 버스라 영어 안내도 함께 해주네요. 창밖을 보니 도로위에 앉아있는 사람들, 사람들이 올려놓은 돌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고, 라파즈로 향하는 차들은 길게 줄을 서 있습니다. 버스는 대열을 벗어나 라파즈 외곽의 허름한 동네 비포장도로로 접어들었습니다. 버스회사 직원들은 버스에서 내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버스가 다닐만한 길로 기사를 안내합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저는 예상 도착시간보다 한두시간 늦어지고 말겠지 생각하며, 태평하게 아침으로 나눠준 요플레를 떠먹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버스가 기우뚱 하며 시동이 꺼지고, 직원이 다시 나타나 안내방송을 시작합니다. “아무래도 도로 사정이 매우 안 좋습니다. 여러분들 모두 내려서 시위대가 막고 있는 곳을 걸어서 통과해야겠습니다.”

그리하여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습니다. 진흙탕에 처박힌 버스를 뒤로하고, 저를 비롯한 한 무리의 외국인들은 집채만한 배낭을 등뒤에, 혹은 앞뒤로 짊어지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전쟁 때 피난을 가던 조상님들의 심정이 이랬을까 생각을 했습니다.  또레스델파이네 이후 10년은 등산을 안하겠다 생각했건만, 난데없이 시작된 또레스데라파즈 등정에 눈앞이 깜깜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무슨 짐을 버려야 가장 덜 아까울지 배낭 속 물품들의 중요도 우선순위를 매기며 걸었습니다. 때마침 덩치가 산만한 서양남자아이가 고산병으로 토를 시작하여 그의 집채만한 배낭은 버스회사 직원에게로 넘어갔습니다. 사람들은 과자와 젤리 같은 요기될만한 것을 나누어먹으며 허기를 달랬습니다. 길거리에 퍼질러 앉아 하하호호 담소를 나누며 시위중이던 군중들은 피곤에 찌든 외국인들을 신기하게 쳐다봤습니다. 수도로 향하는 도로를 전부 막고 그들이 요구하던 것은 더 많은 교통수단의 확충. 시위 한번 제대로 하네 생각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세시간쯤 걸었을까, 시위대의 밀도가 듬성듬성해지고 거리에 차가 한두대씩 지나다닙니다. 책임감있는 버스회사 직원이 지나가는 시골버스 한대를 급히 섭외해 우리를 모두 태웠습니다. 그러다 남은 몇개의 바리케이드를 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귀인이(?) 차 앞을 막고 있던 돌멩이를 모두 치워주고 차를 통과시켜줍니다. 사실 좁은 시골버스 안에서 짐 밑에 짜부러져 있던 터라 정확한 정황은 살피지 못했는데, 아마도 인맥, 꽌시, 네트워크 등이 총동원된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잠시 후 버스는 톨게이트를 통과해 센트로에 우리를 내려줬습니다. 토 하던 아이도, 짐 밑에 깔려있던 저도 모두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끝에 ‘두 발로 걸어서’ 라파스에 겨우 입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