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에서 배고파를 외치다

2013-09-22 09.27.05

지구 최남단에 있는 마을 우수아이아에 와 있습니다. 이 곳까지 오는 멀고도 긴 여정을 소개합니다.

토레스델파이네에서 내려온 18일, 푸에르토 나탈레스의 상점가가 온통 칠레 국기의 색깔인 빨강, 파랑, 하얀 색 술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가게들은 문을 많이 닫았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로부터 묘한 흥이 느껴집니다. 한국에선 추석이었던 18-20일의 3일 연휴 동안 칠레에서도 독립기념일과 국군의날을 기념하는 휴일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19일, 푼타 아레나스로 넘어오니 영업을 안 하고 있는 가게가 더욱 많습니다. 문 연 레스토랑을 겨우 찾아 들어갔더니, 문 닫기 20분 전이라는 말에 사정사정해서 저녁을 사 먹었을 정도입니다. 빨리 요리할 수 있는 음식이라는 추천에 먹었던 seafood soup가 꽤 맛있는 ‘해물탕’이어서 다행이었지, 아니면 비싼 칠레 물가에 분통을 터뜨릴 뻔 했습니다.

연휴 기간이라 그런지 20일에 우수아이아로 떠나는 버스 표는 이미 매진입니다. 하루 늦은 21일 표를 사는 것 까지는 괜찮은데, 상점은 모두 문 닫고 사람들은 자리를 비우는 텅 빈 작은 마을에서의 생활을 하루를 더 연장하려니 당장 생존의 문제가 닥쳐옵니다. 값싼 쵸리빵(빵에 구운 소세지를 끼운 것)가게도, 고급 해산물 레스토랑도 문을 닫았길래 차라리 호스텔 주방에서 음식을 해먹으려 하는데, 이런 슈퍼마켓마저 문을 닫았습니다. 연휴 마지막날 오후가 되니 맛없고 비싼 관광객 대상 음식점 중 문 여는 곳이 조금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21일, 푼타 아레나스에서 리오그란데를 거쳐 우수아이아로 가는 버스가 오전 9시에 출발했습니다. 남미 대륙에서 마젤란 해협의 가장 좁은 부분을 건너 티에라 델 푸에고로 가는 길, 항구에 배는 보이지 않고 차들만 길게 줄을 서 있습니다. 가만히 정차해 있는 버스가 흔들거리는게 느껴질 정도로 바람이 세게 붑니다. 강풍 때문에 해협을 건너는 배가 못 뜨는 모양입니다. 항구에서 두어 시간을 기다리고 나서야 배가 와서 겨우 바다를 건널 수 있었습니다.

밤 열시가 넘어서야 호스텔에 체크인을 했습니다. 버스에서 하루종일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해 배가 미칠듯이 고픈데, 버스 안 그 긴 시간을 잠으로 보냈음에도 수면욕이 식욕을 이깁니다. 굶주리고 피곤한 가운데 비글해협 투어 신청을 하고 잠자리에 들었건만, 다음날 역시 바람 때문에 배가 못뜬다고 해 투어가 취소되었습니다. 덕분에 박물관도 상점도 문을 닫은 주말을 하루 더 심심하게 보냈습니다. 다행히 우수아이아부터는 다시 아르헨티나라 먹고사는데엔 큰 지장이 없었습니다 흐흐. 그나저나, 이제는 약간의 무료함을 참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세상의 끝’ 마을에서의 여정에 잘 어울린다고 느껴집니다. 파타고니아에서 티에라델푸에고로 넘어오는 지난 3일간 저도 인내심 넘치는 어른으로 성장했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