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이 코앞
제 인생에 이보다 더 남쪽에 있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남미대륙의 끝이 코앞에 보이는 지금, El Calafate를 베이스캠프 삼아 약 200여 km 북쪽에 위치한 El Chalten을 다녀 왔습니다.
엘찰텐으로의 여정에는 여러모로 운이 따랐습니다. 가는 길에 눈보라가 휘몰아치기는 했지만 차창 밖으로 남미에만 살고 있는 특이한 동물들을 많이 구경했습니다. 오후 늦게 엘찰텐에 도착했을 때에는 날씨가 점점 개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막상 도착하고 나니 엘찰텐은 휴대폰 신호도 통하지 않는 촌 of 촌동네인데다, 비수기라 식당이며 호스텔이 거진 대부분 문을 닫아 동네가 썰렁합니다. 그래도 비수기를 틈타 원래 예약한 호스텔이 수리를 하는 중인지, 여섯명 용 도미토리가 트리플 호텔룸으로 업그레이드가 되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등산용품점에서 등산화와 등산바지를 대여하고 다음날의 산행을 기약하며 오랜만에 ‘1층짜리 침대’에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파타고니아 지방 칠레와 아르헨티나 국경은 높은 산맥이 가로막고 있는데, 아르헨티나 쪽 엘찰텐에는 비교적 쉽게 이들 산을 볼수 있는 낮은 난이도의 트래킹 코스가 있습니다. 저는 그 중 최저난이도를 자랑하는(ㅋㅋ) 피츠로이 전망대 및 쎄로토레 전망대를 왕복하는 두개 코스를 오전, 오후에 각각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피츠로이는 엘찰텐의 상징과 같은 뾰족한 봉우리로, 일출시 맞은편에서 비춰오는 햇볕을 받아 고깃덩어리처럼 붉게 타오르는 장면이 일품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깨끗이 닦인 등산로를 걸어가니 어려움이 전혀 없을법도 한데, 간만의 새벽 산행 덕분에 저질 체력이 숨겨왔던 정체를 드러내어 속이 울렁거리고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게다가 피츠로이의 일출은 한국인 여행자에게만 유명한건지, 아니면 깜깜한 산길을 더듬어 해뜨는 걸 보러가는 유난스러움이 비정상적인 건지, 등산 코스에는 저와 일행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습니다. 깜깜한 등산로를 걷기 시작할 때에는 제법 무서웠는데, 덕분에 감동스러운 일출장면을 인적드문 곳에서 아주 고요하게 감상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피츠로이의 Before & After. 해가 뜰 무렵에는 얼굴을 붉히고 있던 녀석이 조금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듯 시치미를 뗍니다.
일출보고 내려온 후 한숨자고 일어나, 토레산 전망대를 향해 떠났습니다. 능선을 따라 가는 평탄한 길이었지만 군데군데 녹지 않은 눈과 얼어붙은 시냇물이 있어 꽤 위험했는데, 등산로에서 아이를 등에 업고, 또 한명은 목마를 태우고 내려오는 부부를 마주친 후 잔뜩 고무되어 펄펄 날듯이 전망대까지 단숨에 갔습니다.

한눈에 들어오는 세 개의 나란한 뾰족한 봉우리가 또레산. 저 너머는 칠레입니다.
이날은 하루종일 산에서 햄, 치즈, 잼바른 빵덩어리로 식사를 떼웠더니 하산 후 몹시 허기가 졌습니다. 하지만 엘찰텐은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동네에다 문을 연 식당도 없는 탓에, 빵이 없어 고기를 먹는 마리 앙뜨와네뜨에 빙의하여 마트에서 저렴하게 소고기를 사다 구워먹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엘칼라파테로 돌아오는 길도 날씨가 화창합니다. 아침 일찍 엘찰텐 마을 어귀에서 피츠로이 쪽으로 시선을 향하니 예의 붉게 타오르는 일출이 보입니다. 이럴수가, 굳이 산을 하나 넘지 않아도 일출이 잘 보이기 때문에 아무도 산을 오르지 않은거였나-뒤늦게 깨달음을 얼으며 엘찰텐을 떠납니다. 눈오는날 도착해서 몰랐는데, 맑은날 보니 아주 멀리까지 엘찰텐 마을의 산봉우리가 보입니다. 한참이나 차창밖으로 눈을 떼지 못하며 칼라파테로 돌아왔습니다.
이틀연속 짜장면보다 싼 스테이크를 구워먹으며 어머니는 스테이크가 싫다고 하셨어 노래를 불렀던 탓에, 오늘은 새로운 요리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제 여행 배낭 안에는 두 개의 튜브형 고추장과 작은 지퍼백에 담아온 고춧가루가 있습니다. 칠레 국경 짐검사가 음식물 반입에 엄격하다는 소문이 있어, 혹시나 서울에서부터 지구를 반바퀴나 돌며 애지중지 모셔온 이 양념들을 빼앗기게 될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한번이라도 활용을 해봐야 혹시 빼앗기더라도 아깝지 않을것 같아, 덜컥 닭볶음탕 제작에 도전! 여행자들이 호스텔 주방에 버리고 간 와인으로 밑간을 하고, 고추장과 고춧가루, 마트에서 산 초밥용 간장을 섞어 양념장을 만들었습니다. 닭요리를 하는데 밥까지 할 여력이 없어 부족한 탄수화물은 바게뜨로 대체했습니다. 야매야매한 요리 레시피로 보이지만 결과물은 대성공!! 닭 손질하는게 등산만큼 힘들었다는건 함정… 그래도 오랜만에 맛보는 고추장 양념은 빵을 찍어 먹어도 맛있더군요. 이제 칠레로 떠날 힘이 부쩍부쩍 납니다.
소소하고 깨알같구나. 🙂 저렴한 소고기라니 마냥 부럽다.ㅠㅠ
앗 실시간 댓글 조아요!! 😀 하도 먹어서 좀 질리긴 했지만(죄송ㅋㅋ) 소고기 3천원어치 사서 한병에 3천원짜리 와인에 곁들여 먹는데도 맛있어요ㅋ 소고기+와인 조합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천국이라 할수 있지요!
흐 닭볶음탕과 바게뜨라니 맛있겠다!ㅋㅋ 안주로 해놓고 시원한 맥주 짠 하고싶구먼~
당연히 시원한 맥주도 같이 마셨지 ㅋㅋㅋ 역시 음식을 좀 아는 여자답군!!
멋진 민지씨!! ㅎㅎ 남극이라뇨!! ㅎㅎ 몸 건강히 잘다니고 있네요~ 사진도 브라보 >_<!! 오늘 처음 블로그 놀러왔어요. 좋은 사진 구경 많이 하고 가요- 응원해요 늘-!
이거 쓸때는 사실 아직 코앞까지는 아니었는데, 지금은 마젤란해협 건너기 직전이니까 진짜 코앞이네요! 매니저님 잘 지내시지요? 추석 연휴 즐겁게 보내셨길 바랍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