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트페테르부르크를 적극 추천합니다
모스크바에서 번갯불에 콩을 구워먹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도 어느새 마지막 밤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여행 일정에 러시아가 있다고 주변인들에게 알렸을때 많은 분들이 우려와 걱정의 반응을 보여주셨습니다. 짧은 여행 기간동안 둘러본 것을 가지고 그 지역에 대해 얼마나 왈가왈부할 수 있겠냐만은, 다행히 지금까지는 별일 없이 무탈했고 크게 치안이 안 좋은 느낌은 받지 않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쓰는 와중에 호스텔에 있는 중국인들이 모스크바에서 가방 털린 주변 여행객들 이야기를 열심히 하고있네요^^;) 백야 덕택에 어두운 길을 걸을 일이 없었던 게 이곳에서 받은 안전감의 8할은 차지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이 밤 10시 40분인데 아직도 밖이 환하고, 상뜨페테르부르크는 워낙 많이 걷게되는 도시라 해가 지기 전에 몸이 먼저 지쳐 나가 떨어지기 쉽상이었습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달려 모스크바를 둘러본 후, 다시 야간열차를 타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했습니다. 이 두곳은 유서깊은 대도시로, 바이칼 호수에서 느꼈던 대자연의 포근함과는 아주 상반되는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모스크바가 구 소련의 위엄을 보여준다면, 상트는 화려했던 제정러시아 시절의 영광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크렘린, 성바질성당과 같은 오래된 건물들과 소비에트연방을 상징하는 실용적이고 권위주의적 건물들이 뒤섞여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스크바도 매력있었지만, 저는 유럽 느낌이 물씬 풍기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쪽에 아무래도 마음이 끌리더군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한 첫 날. 예카트리나 대제가 의욕적으로 그림을 모아 놓은 에르미타쥬 미술관에서 오랜만에 그림을 보느라 다리가 부러질 것 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베르사유 궁전같은 화려한 건물 안에 루브르 급의 르네상스,고전주의 그림이 잔뜩 있는데, ‘아 그림도, 건물도 멋있는데 너무 힘들다 빨리 남은부분 보고 집에 가야지’할 때 쯤 오르세 급의 인상주의 그림이 뙇하고 무더기로 나타납니다. ‘이런 고갱이 나오다니 여기만 보고…’하고 옆방으로 가면 ‘앗 고흐가 나오다니 안 볼수 없지..’하고 옆방으로 가면 ‘이럴수가 피카소가!’ 뭐 이런 시나리오입니다. 매우 폭넓은 미술사조를 다루고 있음에도 양과 질 모두 훌륭한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어 대충 보다 나오기가 힘든 곳이었습니다.
도시는 파리를 연상케하는 백년 넘은 아름다운 건물들로 가득차있습니다. 왕실 사람들이 살던 궁전, 광장, 공원, 러시아정교회 특유의 기묘한 형상과 색채의 교회들, 그리고 그 사이사이로 그림처럼 물이 흐릅니다. 표트르 대제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설계할 당시 북방의 베니스를 표방하여 강과 운하를 끌어들였기 때문입니다. 이 볼거리 많은 도시를 둘러보는데에는 Hop on-Hop off 시티버스투어, 운하를 돌아다니는 보트투어를 모두 하고나서도, 한참동안이나 뚜벅뚜벅 걸어다닐 체력이 아주 많이 필요했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싫었던 점도 물론 있었습니다. 7월 말인데 어찌나 추운지 버스에서는 히터가 나오고 사람들은 패딩을 입고다닙니다. 할수 없이 긴팔옷과 스카프를 샀는데, 다음날은 갑자기 해가 쨍하고 나타나 사람들이 코트를 주렁주렁 손에 들고다니는 풍경을 연출합니다. 물가는 어찌나 이리 비싼지, 허름해보이는 반지하 식당을 골라 들어가는데도 음식 좀 시켰다하면 몇만원이 나옵니다. 첫날 간 숙소는 깨알같은 러시아어로 손바닥만한 간판을 써붙여놓은게 다여서, 숙소를 코앞에 두고도 찾을 수가 없어 거리를 한참이나 헤맸습니다.
그래도 정말 한번 더 오고 싶은 곳이네요. 파리와 베니스와 이스탄불을 섞어놓은 듯한 느낌이랄까요. 여러분께 감히, 상뜨 페테르부르크를 적극 추천합니다.
# 그 외에 두서없이 떠오르는 러시아 여행에 관련된 자잘한 정보 덧붙임
*러시아 일정을 준비하면서 한글로 된 러시아 가이드북이 하나도 없어서 놀랐습니다. 러시아어, 러시아 문화 관련된분들 얼른 가이드북 좀 써주세요.
*러시아에서 인종차별 문제를 겪지 않을까 좀 염려했었는데, 체감상으로는 이게 불친절인지 유색인에 대한 차별인지 잘 구분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러시아인들 중에서도 동양 얼굴이 많고, 이르쿠츠크 쪽으로 갈수록 더 많습니다.
*키릴문자를 읽는 법을 알아두면 아주 유용합니다. 모스크바에는 지하철 노선도에도 영어병기가 되어있지 않습니다.(상트는 되어있음) 몽골도 키릴문자를 쓰고 있는 탓에, 저는 몽골과 러시아를 3주 가까이 여행했더니 지금은 제법 읽는 흉내를 낼 수 있게 되었네요.(그러나 이제 떠날때가 다 되었다는게 함정)
*상뜨 페테르부르크에서는 강과 운하 아래로 지하철이 지나다녀서인지, 지하철 역이 아주~ 깊게 파여있는게 아주~ 인상깊습니다.
가보고 싶은 미술관에 에르미타쥬 미술관 하나 추가해야겠다. 미술이라고는 눈꼽만치도 관심 없었는데, 역시 좋은 작품들을 보니 관심이 생기더라. 건강하게 잘 다니고 있는것 같아보여서 안심되고 또 부럽넹!
에르미타쥬 좋아좋아!! 지금까지 가본 미술관에서 손에 꼽을 정도인듯?? 나는 휴대폰 털린거 빼고는 잘 다니고 있당ㅎㅎ 여기저기 놀러다니기 제일 좋은 직업을 가지신 분께서 사표쓰고 백수된 사람을 부러워하노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