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가 커피라면 이건 TOP야
시베리아 철도 탑승기 – 기차가 커피라면 이건 TOP야
통상 시베리아 횡단열차라고 하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혹은 상트페테르브루크)를 연결하는 9천여km의 대장정을 이야기합니다. 제가 여행한 길은 이의 변형/확장판이라 할 수 있는데, 북경에서 시작, 울란바타로를 경유한 몽골 종단열차(?)를 거쳐, 시베리아의 파리 이르쿠츠크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편승하는 경로입니다. 북경-울란바타르, 울란바타르-이르쿠츠크 까지의 열차는 각각 30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하지만 5시간 이상 소요되는 출입국 검사를 포함하고 있고 하룻밤만 기차에서 보내면 되는 시간대로 편성된 것에 비해, 이번에 탄 이르쿠츠크-모스크바 구간은 순수 탑승시간만 80시간에, 4박을 기차에서 보내고, 다섯개의 시간대를 통과하는 기나긴 여정입니다.
이 포스트를 쓰고 있는 당시 저는 기차에서 내리기까지 약 10시간 정도를 앞두고 있는데, 그동안 세 개의 컵라면, 약 반마리의 닭, 2리터가 넘는 액체류, 한 봉지의 초코렛, 꽃게랑 한봉지 등을 먹어치웠고, 동생이 컴퓨터에 넣어준 스타워즈에피소드6를 보았고(센스있는 영화선정에 감사하며 4,5는 바이칼호수 알혼섬에서 요양할 때 봄), 대망의 카르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완독했으며(전자책에 넣어온 또 다른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백치는 중국-몽골-러시아 간 국제선에서 읽음) 그 사이 사이의 많은 시간을 잠으로 보냈습니다. 덩치가 산만하고 털이 북슬북슬한 러시아 아저씨, 엄마한테 혼나고 하루에 세번씩 흑흑 울던 귀요미 러시아 아기, 장난꾸러기 아들과 여행하던 피곤한 얼굴의 러시아 엄마가 저의 룸메이트가 되 주었습니다. 이들과 사방이 2m정도 되는 정육면체 쿠페 안에서 70시간을 보낸 후 저의 소감은… 정말 몹시 머리가 감고 싶습니다…
머리가 근질근질한 것만 뺀다면, 이번 기차 여행은 아주 쾌적하고 편안했습니다. 깨끗한 침구가 제공되고 열차칸마다 배치되어 있는 프로바니스타 아주머니는 시시때때로 열차 안을 청소해줍니다. 기차는 하루에 두세번 정도 역에 정차하는데, 플랫폼에서 빵, 만두, 찐감자를 곁들인 고기류 등을 살 수 있습니다. 열차 안의 식당칸은 러시아어 메뉴밖에 제공되지 않아서, 옆 테이블을 따라서 시키느라 저의 취향이 반영된 메뉴를 고르기가 힘들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가격도 비싸고 위치도 멀어서(자리는 20번칸인데 식당칸은 11번…)한번 가고 안가게 되더군요.
이르쿠츠크에서 해가 잘 지지 않는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계속해서 북위 50도 가량을 통과하고 있어서 낮이 깁니다. 거기다가 다섯개의 시간대를 통과하면서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고, 열차 내 시간표는 모두 러시아 내 최서쪽 시간대인 모스크바 시간을 이용하고 있어서, 대체 지금이 몇시인지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알아차리기가 힘듭니다. 시간과 정신의 방에 난 창문 밖으로 세번 떴던 해가 세번 지고, 석양으로 물든 저 해가 다시 떠오를 시간쯤이면 저는 모스크바에 도착해 있을 예정입니다.
# 그 외의 자질구레한 정보들
*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이용하는 여행자 분들은 lonely planet 의 trans-siberian railway편을 참조하세요. 저는 러시아편을 보고 있는데, 우리와 비슷한 경로로 이동하는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시베리아횡단열차편을 보고 있었습니다. 둘다 한글 번역본은 없는 듯 했습니다.
* 2014년 소치올림픽을 앞둬서인지, 러시아철도청도 드디어 영문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회원가입 후 쉽게 예약 가능합니다.
* 일정이 fix되었다면 철도 예약은 서두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약 3일전 예약을 시도했더니 좋은 시간대의 저렴한 자리는 예약이 불가능하더군요.
* 이르쿠츠크의 경우, 역사 2층에 있는 rud사무실에서 온라인 예약 발권을 할 수 있었습니다. 늦은 시간에는 사무실이 문을 닫으니 밤기차를 타시는 분들은 낮시간대에 미리 역에 들러서 발권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드래곤볼의 시간의 방 알지? 횡단열차 한번 타고 나오면 그냥 달력을 점프한 느낌일 거 같아.ㅋㅋ
시간이 훌쩍~ 공간도 훌쩍~ 이제 슬슬 한국에 문자보내려니 시차 때문에 조심스러워지기 시작하네요.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 문학관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니?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도스토예프스키 박물관은 찾았는데 안에는 못들어가봤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