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도협을 건너 샹그릴라로(I)

리쟝 판바 호스텔 주인 아저씨의 권유로 호도협 트레킹을 하게 되었습니다. 굽이굽이 능선을 돌고 돌아 산속 마을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1박을 하고, 둘째날 산을 내려와 까마득한 계곡 아래까지 내려갔다 올라오는 꽤나 긴 등산입니다. 한국 여행자들의 블로그에서 호도협 트레킹의 난이도가 그닥 높지 않고, 계곡을 내려갔다 오지 않으면 1박2일 코스를 하루에 주파하는 경우도 있다고 읽은 탓에 가벼운 마음으로 등산을 시작했습니다. 등산화도 없이 운동화 달랑, 가방에 비상식량 하나 챙기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이날은 대학을 갓 졸업한 중국소년 한명과, 여러명의 서양인들과 함께 했습니다. 처음에는 영어와 중국어를 섞어 하하호호 수다도 떨어가며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호도협 트래킹의 출발점인 챠오토우부터 나시 게스트하우스를 지나 28밴드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오르막길을 걸어가는 길이 남녀노소 국적을 불문하고 만만치 않습니다. 28번 굽이굽이 구부러져 있다고 해서 28밴드라는 이름이 붙은, 우리말로 치면 ‘깔딱고개’를 넘어가는길, 이만하면 5굽이정도는 지나쳤겠지 할 때쯤 아직도 28밴드를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사인이 나타납니다. 다들 각자 자기나라 말로 열심히 욕을 내뱉는 진풍경이 연출됩니다. 28밴드를 지나치고나면 능선을 계속해서 따라가는 평탄한 코스라 크게 무리는 없지만, 거리도 꽤 되고 체력이 좋지 않은 다른 일행을 기다리며 걸어가다보니 목표로 했던 halfway guesthouse(중도객잔)에 도착했을 때는 어느덧 6시가 다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도 오후에 걷는 길에 내내 보았던 장엄한 협곡과 신비로운 운봉, 저 멀리 보이던 설산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장면이 될 것 같습니다.
중도객잔에서 한참이나 각지에서 온 여행자들과 수다를 떨다보면 밤이 됩니다. 날씨가 흐려 소문으로만 듣던 쏟아지는 별을 볼 수 없었던 것이 아쉽기만 합니다. 호도협은 한국인들에게 꽤 인기있는 트래킹코스인 것으로 알고있는데, 어째 이곳을 포함해 이번 윈난 여행 내내 단 한명의 한국인을 만나지 못하네요. 덕분에 영어, 중국어 연습은 제대로 하고 갑니다. 피곤이 와장창 몰려와 귀에 들려오는 말들이 외국어인지 외계어인지 분간이 안될 쯤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산장에서 맞은 호도협 트레킹의 둘째 날, 어젯 밤 날씨가 흐리더니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립니다. 배낭 안의 물건을 비닐봉지로 전부 다 싸고, 수지표 고어텍스 잠바를 단단히 껴입고 하산길에 들어섭니다. 어제부터 계속되는 장관을 오른편에 끼고, 폭포와 개울을 건너, 비탈길에 염소를 풀어 기르며 살아가는 시골 동네를 스쳐 지나갑니다. 여행에 필요한 정보는 클릭 한번으로 찾을 수 있는 시대에 살면서 세계여행을 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큰 낭비인가 생각하며 자신있게 떠난 여행인데, 중국은 커녕 윈난성 밖으로도 나가보지 못했을 것이 분명한 촌부들을 산길에서 마주치며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이들이 문명으로부터 한발 떨어져 그들만의 전통을 고수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명목으로, 그들이 내가 누리고 있는 문명의 이기를 나눠가지고자 공사를 하고 전봇대를 세우는 모습을 보기 싫어하는 내안의 이율배반적인 면모가 자꾸 느껴져서 인가봅니다.
전봇대가 세워지고 새 건물들이 늘어서고 있어도, 호도협에 흐르는 계곡물은 대자연의 위용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호랑이가 계곡을 뛰어넘으며 발을 딛었다는 바위에 올라가, 이 커다란 바위를 흔들리게 할 만큼 거세게 흐르는 물을 오랫동안 지켜봤습니다.
# 이것저것 유용한 정보들
* 평소에 등산을 즐겨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호도협 트레킹은 절대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차를 타고 보는 광경과 직접 산길을 걸으며 보는 광경에는 큰 차이가 있으니 시간이 허락한다면 꼭 한번 시도해 보길 권유합니다.
* 1박을 염두에 둔다면, 호도협 트레킹의 시작구간인 챠오토우에서부터 등산을 시작하고 배낭은 티나 게스트하우스로 보낼 수 있습니다. 중도객잔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오전에 티나로 내려와 계곡을 내려갔다 올라온 후 짐을 찾아 리쟝 또는 샹그릴라로 가는 버스를 타는 것이 아마도 정석인듯 합니다. 체력이 충분하다면 우디 게스트하우스까지 갈 수도 있습니다. 샹그릴라로 가는 버스는 자리가 충분치 않을 수 있으니 하산 직후 자리 확인이 필요합니다.
# 오늘의 이동은 리쟝에서 호도협트래킹 입구까지, 하산 이후 티나 게스트하우스에서 샹그릴라까지 모두 버스 이동
# 오늘의 숙소는 호도협트래킹 구간의 중도객잔(halfway guesthouse)

# by 나는컁 | 2013/07/04 19:07 | 대륙을넘어 | 트랙백 | 덧글(2)

 Commented by 마카로니 at 2013/07/06 05:03 
판바 아저씨.. 하하 저는 몇년전에 갔었는데 오빠라고 생각했어요ㅋㅋㅋㅋㅋ 그나저나 호도협 건너시다니 멋지네요!!
 Commented by 나는컁 at 2013/07/06 23:56 
댓글을 보고 나니 제가 호도협을 건넌게 아니고 따라 걸었을 뿐이었다는걸 깨달았어요 ㅋㅋㅋㅋ 판바아저씨는… 다시 생각해봐도 오빠의 범주에 넣기는 조금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