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준비: 예방주사 얘기는 별로 없는 예방주사 접종기
지난 수요일에는 휴가를 하루 내고 분당 서울대병원에 황열병 예방접종을 받으러 다녀왔습니다. 중남미는 여행할 때 여러모로 조심할 것이 많은 동네입니다. 불안한 치안에 대비한 지갑조심, 가방조심 뿐만 아니라 열대 지방에서 걸리기 쉬운 각종 질병에 대한 조심도 함께 해야하는 곳이지요. 특히 중남미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우유니 사막을 여행하기 위해서는, 볼리비아 입국 시 황열병 예방접종을 증명하는 노란 카드를 보여줘야 합니다.
수도권에서 황열병 예방 접종을 받을 수 있는 곳은 크게 세 곳이 있는데, 을지로에 위치한 국립 중앙의료원, 분당 서울대병원, 인천공항검역소가 그곳입니다. 황열병 예방접종은 접종일로부터 10일 후부터 10년간 효력이 발휘하고, 그 동안 감기, 근육통 등을 살짝 앓을 수도 있어서 미리미리 접종을 해둬야 했는데, 여름방학이 가까워서인지 예약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국립 중앙의료원은 1주일 이상 예약이 밀려있어서, 그나마 집에서 가까운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주사를 맞기로 선택했습니다.
집에서 분당 서울대병원까지는 대중교통으로 1시간 30여분이 걸리는데, 세 노선의 지하철을 갈아타고 버스도 두 번이나 타야하는 멀고 먼 길입니다. 최근에 국제면허증을 발급받고 운전 연습을 더 해야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있던 저는, 용감하게 운전을 해서 이곳에 방문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간 “차를 사고나면 절대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떠날 수 없을거야”라는 마음가짐으로 차를 사지 않고 회사를 다녔기에, 자가 운전을 위한 저의 선택은 그린카 http://www.greencar.co.kr 라는 카쉐어링 업체를 이용하는 것이었습니다. 홈페이지에서 회원가입을 한 후 카드를 수령하고나면, 서울 전역 주차장에 있는 차를 예약한 시간동안 사용한 후, 다시 그곳으로 반납만 하면 되는 아주 훌륭한 서비스입니다. 렌트카와 비슷한 개념이지만, 시간당 예약이 가능하고, 주유(차 안에 주유 전용 카드가 있음)나 보험 등 렌트의 번거로운 과정이 최소화 되어있어 시내에서 차를 사용할 일이 있을 때 가끔 이용해왔습니다. 다만 이 업체의 치명적인 단점은 도무지 전화통화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한번은 층수가 5층에 달하는 광활한 만주벌판같은 주차장에 있는 차를 예약했다가 도무지 차를 찾을 수 없어 전화를 했는데, 열번을 걸어도 스무번을 걸어도 전화를 받지 않아 아 씨 정말 열이뻗쳐서 ㅅ…가 아니고 그,그러니까 조,조금 많이 화가 났던 적도 있었습니다. 예방접종을 하러 가던 이 날 아침에도, 준비가 다소 늦어 시간 빠듯하게 집을 출발하려니 다소 불안함이 밀려왔습니다.
집을 나서니 비가 추적추적 내립니다. 주차장에 가서 차를 빼려고 하는데, 이럴수가, 차 창문에 붙어있는 카드 인식기에 카드를 대도 삑 소리만 날뿐 문이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주차장 주인 아저씨는 “시간이 아직 안되었나 보네”하면서 태평하게 자리를 떠나십니다. 전화 안 받기로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이 회사에 전화를 해봅니다. “죄송합니다. 상담원이 모두 통화중이라…”로 시작하는 수십번 들어온 멘트가 흘러나옵니다. 도대체 이 회사 인사담당자는 더 많은 상담원을 채용하지 않고 뭘 하고 있는걸까요? 그래도 사용객이 적은 평일 아침에 연락을 했더니 두어번 안에 연결이 됩니다. 카드 번호를 전화로 재접수 후 무사히 시동을 걸고 출발을 하면서, 한번만 더 내 전화를 안받으면 인터넷에 악플을 쫙 싸지르고 그린카를 탈퇴하겠다던 마음가짐을 누그러뜨렸습니다.
비오는 출근시간대, 남부순환로에 접어드니 도로에서 차가 꿈쩍을 할 기미를 안 보입니다. 그 와중에 뚫려있는 좌회전 차선으로 잘못 접어들었다가 꽉 막힌 직선차선으로 끼어들기에 실패하고, 결국 유턴을 해서 줄 뒤로 가는 굴욕을 한 번 겪습니다. 내비게이션에 뜨는 예상 도착시간은 이미 진료 예약시간을 한참이나 넘어섰습니다. 앗 그런데 계기판을 보니 기름이 없습니다. 영차영차 오른쪽 차선으로 빠져나가 주유를 하고 다시 영차영차 왼쪽 차선으로 끼어들어옵니다. 일년에 운전을 세네번 할까말까한 저에게는 꽤 큰 시련이었습니다. 그래도 명불허전이라고, 경부고속도로에 들어서니 차가 고속으로 달리기 시작합니다. 몇번의 멘붕 위기가 있었지만 이만하면 잘 처리했군, 후훗 하며 엑셀을 밟았습니다.
톨게이트를 빠져나가는 길, 모든 차에 하이패스가 설치되어있다는 그린카의 설명대로 하이패스 통로로 빠져나갑니다. 어라 그런데 하이패스 기계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는 문구가 전광판에 떠오르고, 저는 당황스러움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상담원 호출버튼을 누르기 위해 속도를 늦추는데, 백미러로 제 뒤에 줄줄이 서있는 차가 눈에 들어오고, 마음이 쪼그라진 저는 그야말로 어쩔줄 모르며 톨을 빠져나갑니다. 이런 경우엔 사고 방지를 위해 그냥 톨게이트를 빠져나가는게 맞는데, 왜 위기 상황에선 그런 평범한 상식이 머리속에 떠오르지 않았을까요. 병원에 도착하고 나니, 이번엔 주차장에 자리가 없습니다. 주차장을 빙글빙글 돌다가 공사 자재가 쌓여있는 주차칸 근처에 차를 대면서 불안한 마음으로 자리를 뜹니다. 여기까지 내가 코로 왔는지 귀로 왔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병원에 도착해서 의사선생님과 잠시 상담을 합니다. 작은 종이에 깨알같이 적어낸 여행국가 리스트를 보시더니, 말라리아 예방약이 필요한지 해당 국가별로 꼭 확인하라고 신신당부를 하시며*, 황열병, 파상풍, 장티푸스 접종을 처방하셨습니다. 왼쪽 팔에 두방 오른쪽에 한방을 맞으니 팔이 얼얼합니다. 반나절 내내 계속된 우여곡절 끝에, 노란색 황열병 접종 증명서를 드디어 손에 넣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지하로 나 있는 고속화도로를 통과하는데, 내비게이션이 길을 잃어 유턴을 세 번쯤하며 같은 길을 왔다갔다하는 당황스러운 사태를 또 겪었습니다. 아침에 겪은 일련의 멘붕 덕에 조금 더 의연하게 상황에 대처해봅니다. 한편으로는 여행 중 운전을 하는 상황은 최소화해야겠다는 생각과, 이 정도 경험치면 카이로나 상하이같은 극단적인 도시만 빼고는 다 다닐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교차합니다. 이렇게 여행을 위한 또 한 단계의 준비를 마쳤습니다.
*여행지별 말라리아약 복용의 필요여부는 미국 정부의 질병통제및예방센터 홈페이지 http://www.cdc.gov/malaria/travelers/country_table/a.html 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내가 이번에 프랑스 남부 차 타고 다녀와 봐서 아는데 (…운전은 내가 하지도 않았지만ㅋㅋㅋ) 도시는 내비있으면 다 잘알려주더라. 심지어 일방통행로까지 잘!
근데.. 큰 도시는 길 좁고 일방통행로 많아서 불편하고 대신 도시와 도시 이동하긴 완전 편리하고! 근데 기름값이랑 고속도로 통행료 비싸고… 그리고 차가 있으면 주차 그런거때문에 별로 좋지는 않아. 특히 나처럼 걸어다니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