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스타일

인류의 기술 수준이 진보하면서 사람들의 여행의 스타일도 바뀐다는 것을, 독일 dm에서 기념품 쇼핑을 하면서 다시 한번 실감했다. dm은 우리나라로 치면 올리브영 같은 약국 및 화장품 샵이다. 이곳에서 실용적인 여행 기념품이나 주변인들에게 선물로 줄 만한 것들을 많이 판매하고 있다고 들어 여행 막바지에 방문했다. 뮌헨 구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매장으로 갔더니 우리 같은 관광객들이 바글바글했다. 독일 사람들이 배탈이나 목감기 같은 가벼운 질병을 치료할 때 먹는 허브티가 인기 품목이라 골라볼까 하는데, 작은 상자에 독일어로 쓰여 있는 설명만 보고는 도무지 고를 수가 없었다. 몇 년 간 영어권 국가에 살다 보니 알파벳으로 쓰여 있는 글씨는 당연히 알아볼 수 있을 거라는 착각에 빠져있었나 보다. 그때 주변에 함께 있던 중국 여행객들이 핸드폰을 꺼내 구글 렌즈로 번역을 하면서 공격적으로 장바구니에 상자를 쓸어 담아가기 시작했다. 아하, 저렇게 하면 되겠구나, 주섬주섬 핸드폰을 꺼내고 있으니 어머님이 내 어깨를 톡톡 치면서 이걸 좀 찾아주렴, 하며 핸드폰을 건네어주셨다. 독일을 다녀온 다른 여행객들이 네이버 블로그에 올려놓은 dm 추천 상품 목록이다. 너무 최신 기술보다 손에 더 익은 기술이 더 잘 작동할 때가 있다.

나는 인터넷은 있어도 스마트폰은 아직 없던 시대의 해외여행을 경험해 본 세대이다. 기차역에 내려 숙소를 찾아가는 방법을 종이에 프린트해 챙겨 다니고, 현지어로 사람들과 손짓발짓으로 길을 묻고, 식당에 가면 옆 사람이 시킨 메뉴를 무조건 따라 주문했던 여행만이 줄 수 있는 낭만이 있었다. 한 번 기술에 굴복해 버린 후 생긴 관성은 쉽게 되돌리기 어렵다. 여행 초반 남편의 핸드폰 1대만 국제 로밍을 신청해 가고 내 핸드폰으로는 사진만 찍었는데, 결국 스마트하지 않은 스마트폰 사용 상황이 너무 답답해져 중간에 로밍 서비스를 추가했다. 이런 나에게도 구글맵에서 평점을 확인하지 않고 여행지에서 식당을 골랐던 시절이 있었다니!

정보 기술의 발전이 여행지에서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소하여 사회적 효용을 증가시켰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전 세계 CS 전공자들이 피땀 흘려 노력해 주신 덕분에, 우리는 애는 무슨 고생이냐는 비난을 피할 정도로 어린이의 심기 경호가 충분히 가능한 동선을 짜고, 시부모님께 일정한 빈도로 동양 음식을 제공해 드리고, 계획을 짜느라 지나치게 스트레스받지 않으면서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발길 닿는 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다니던 20대 때의 여행 스타일이 전혀 그립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 시대를 살았던 더 젊었던 내가 즐겼던 스타일의 여행이 있고, 지금 달라진 세상에서 더 커진 가족들과 함께 다니며 경험할 수 있었던 이번 여행만의 즐거움이 있다.

유럽 대륙을 떠나 미국으로 돌아갈 시간. 미성년 자녀와 함께가 아니었다면 자동 출국 심사도 가능했을 텐데, 아이가 있으니 줄을 한 번 더 서야 된다. 그래도 어린이가 보안 검색대에서 발자국에 발을 맞춰 짧은 두 다리를 쫙 벌리고 어른들을 따라 하는 모습을 보고, 빵 터진 보안 요원분들이 매우 철저한 몸수색을 해주셔서, 어린이는 여행 막바지까지 기분이 꽤 좋았다.

뮌헨에서 이륙한 비행기는 환승지인 디트로이트 공항에 내렸다. 3주간 오래전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과 함께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근사한지, 아름다움을 위해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며 살아가는 것 역시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하며 유럽을 돌아다녔다. 팁도 많이 안 줘도 되고, 저렴하게 좋은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여행이 끝나는 게 아쉬울 틈도 없이, 새로 지어 깨끗하고 큰 공항에서 환승을 하면서 곧바로 자본의 힘에 압도당하게 된다. 시원시원하게 뻗은 넓은 차선을 달려 널찍한 주차 공간에 차를 대는 미국에서의 생활로 복귀다. 수입 델리 코너에서 유럽에서 먹은 것과 최대한 비슷해 보이는 비싼 햄과 치즈를 고르며 지난 초여름 유럽에서 보냈던 시간을 소소하게 추억한다. 그리고 또 다음 여행지는 언제 어느 곳이 될지, 어떤 스타일로 하게 될지 기대하며, 이방인의 삶을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