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품 가게 전투
만 3세 어린이에게 3주는 제법 긴 시간이다. 어린이는 여행동안 낮시간 내내 실수를 한 번도 하지 않을 정도로 배변 훈련을 진행시켰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하루종일 재잘재잘 떠드느라 한국어가 부쩍 늘었다. 그리고 또 하나, 자본주의 사회의 필수 개념 ‘돈’에 대해 알게 되었다.
현금을 잘 사용하지 않는 사회에서 아이에게 돈이 무엇인가 가르치는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유발하라리도 저서 사피엔스에서 인류가 ‘화폐’와 같은 허상에 대한 믿음을 가짐으로써 문명을 발달시켜 왔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요즘은 화폐라는 매개체가 보이지도 않는 상태에서 거래가 진행된다. 여행 전까지의 어린이는 기계가 ‘삡’하는 소리를 내고 나야 우리가 가게 선반에 있던 물건을 집에 가져갈 수 있게 된다는 정도로만 어렴풋이 시장 경제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다 유럽 여행을 하면서 현금으로 거래를 하는 모습을 접하게 된 어린이는, 엄마 아빠의 주머니에 동전과 종이가 들어있으며 그걸 가게 주인에게 내면 가게에 있는 물건과 교환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이제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조금 더 아이를 키우기 쉬워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것은 거대한 오해. 화폐 개념이 갖추어지기 전까지의 아이에게 물건이란 가게에 있으면 만지면 안되는 것, 집에 있으면 만져도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의 시스템을 습득한 어린이는 흥미로운 물건이 있다 -> 엄마/아빠의 주머니에 돈이 있다 -> 저 돈을 주고 나면 가질 수 있다 의 순서로 사고를 잇는 것이 가능해진다. 즉, 소비에의 욕망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런 연유로 우리는 여행의 후반부를 어린이와 매일매일 기념품 가게 전투를 치르며 이어가게 된다. 여행지에 있는 관광 기념품 샵에서 얼마나 많은 장난감을 팔고 있는지 아이와 함께 여행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를 것이다. 어른이 굳이 허리를 숙여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진열대의 아랫칸에는, 어른들보다 시선이 낮은 곳을 향하는 어린이들을 현혹시키기 위한 목적의, 대개 관광지와는 아무 연관이 없는 상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H 어린이의 정신을 빼앗는 것은 주로 탈 것이다. 화려한 색깔의 장난감 자동차를 발견하면 우리가 인스부루크의 올드타운이든 호숫가 마을 할슈타트이든 그 날 어디를 여행하고 있는가와는 전혀 관계없이 그것을 갖고싶어 했다. 이 즈음 우리의 일정은 다음과 같다. 오전에 관광지로 이동 – 점심을 먹고 주변을 좀 더 둘러봄 – 슬슬 이동할까 싶을 때 어린이가 “저기(기념품 샵) 한 번 가 보자”고 제안 – 자동차 발견 – 안 된다고 하면 울고불고 소리지르기 시작 – 들춰업고 카시트 감금행 – 낮잠 까무룩. 밀레니얼 부모 세대의 육아는 ‘안 돼’를 말하지 않는게 트렌드라던데 도대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여행 막바지에 이르르니 어린이가 떼를 쓸 때마다 네가 여기서 자동차 사느라 돈을 다 쓰면 배고파도 맛있는걸 못 먹고 집에도 못 가서 너는 여기서 엄마 아빠 없이 살아야된다, 식의 과장과 허구를 섞은 만 3세 용 맞춤 설명이 술술 나왔다. 할미 할비가 비행기타고 떠나기 전날에 진짜 크고 멋진 자동차 사주실거야, 라는 협상으로 당장의 소비를 미루는 것도 가능해졌다. 이렇게 어린이는 예산과 절약, 절제와 인내를 배우고, 엄마 아빠는 말 안듣는 어린이에게 똑같은 말을 삼만오백번쯤 하면서도 화를 내지 않는 마음 수련을 한다.

여자저차 어린이는 여행 마지막 날 뮌헨 도심의 큰 백화점에서 멋진 장난감 자동차를 두 대나 득템하였다. 비록 여행이 끝나고 집에 온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