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뽕을 뽑겠다는 의지

베네치아를 마지막으로 이탈리아를 떠나 오스트리아로 가는 날. 지금까지의 여정은 시부모님이 오랫동안 가고싶어 하셨던 지역이라 갈만한 곳이 딱 정해져있었다면, 앞으로 남은 여정은 거쳐가는 도시만 정해져있고 특별한 계획이 없는 상태였다. 이 날의 주요 일정 역시 베네치아를 출발해 인스부르크 외곽에 있는 숙소까지 이동한다 – 가 전부였다. 순 이동시간은 자동차로 4시간이 조금 넘는 수준. 우리는 가다가 적당히 밥먹고, 남는 시간엔 케이블카를 타지뭐,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했다.

밥이야 당연히 먹는거라지만 웬 케이블카냐고? 우리는 돌로미티 여행을 시작하며 7일짜리 수퍼서머패스를 구매했는데, 이 이용권의 사용기한이 딱 하루 더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돌로미티 지역은 2026년에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기로 예정되어 있을 정도로 스키 리조트로 유명한데, 여름철에는 이 곳에 설치되어 있는 곤돌라나 케이블카, 푸닌쿨라 등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이용권을 수퍼서머패스라는 이름으로 판매한다. 7일권을 구매하면 첫 사용일로부터 7일 내에 5일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이 날은 돌로미티 여행권을 산 지 딱 7일차가 되는 날이었고, 트레치메와 베네치아를 다녀온 이틀을 빼고 하루에 한 번 이상 케이블카를 탔던 4일치가 차감된 후 딱 1일치 분량이 남아있는 상태였다. 비싼 돈을 주고 산 케이블카 입장권인데, 이왕이면 뽕을 뽑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우리는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출발한 후 쉬엄쉬엄 경치구경을 하다가 볼차노에 있는 푸닌쿨라를 탄 후 느즈막히 점심을 먹기로 대강의 계획을 세웠다. 볼차노는 돌로미티 서쪽 끝에 위치한 도시로 돌로미티 여행의 기점이 되는 경우가 많다. 푸닌쿨라 역을 목적지로 하고 근처의 주차장에 차를 세울 때 까지는 모든 것이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었다. 그런데 푸닌쿨라 역 개찰구에 이용권을 갖다대었더니 사용이 안 되는 것이다. 당황스러움에 자세히 살펴보니 역 안내판에는 패스와 관련된 마크가 하나도 그려져있지 않다. 이 곳은 여행객을 위한 레저용 탈 것이 아닌, 일상 생활에서 대중교통 수단으로 이용되는 푸닌쿨라가 운행되는 곳이었던 것이다. 무계획 인간들이 오랜만에 야심차게 세운 계획은 고작 이런 수준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좌절 금지. 우리는 최대한 큰 길에서 덜 벗어나면서도 돌로미티 패스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을 열심히 서치해서, 볼차노에서 40km 가량 북쪽으로 떨어진 리조트를 찾아낸다. 뮬바흐(Mühlbach) 라는 이름의 마을로, 사실 당시에는 지명도 모르고 간 곳이라 지금 이 글을 쓰는 중 검색을 통해 알게 되었다. 산길을 굽이굽이 운전해 올라가는 길. 이상하게 차도 사람도 다니지 않는 한적한 길이 계속 이어지고, 아무리가도 케이블카가 안 나온다. 패닉이 와서 길가에 차를 세우고 이렇게 계속 가는게 맞는걸까 가족 회의를 열 정도였다. 여기까지 왔으니 케이블카가 운행하는지 적어도 확인은 해봐야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열심히 달린 결과 결국은 마을에 도착했다. 케이블카는 다행히 앞으로 한 시간 가량 더 운행한다고 했다. 중간 스탑이 두 번이나 있을 정도로 운행구간이 길었다. 산꼭대기 정류소에 내리니 저멀리 전 주 우리가 열심히 발로 누볐던 돌로미티 산자락의 북사면이 보인다. 실수와 불안 끝에 우연히 마주한 풍경임에도, 알고 기대하며 찾아간 곳의 풍경만큼이나 아름답게 느껴졌다.

내려오는 길에는 이탈리아 돌로미티 여행을 마감하는 의미에서 이곳 티롤 지역의 특색이 곁들여진 피자를 먹었다. 식당은 이번 여행 전체 중 단연 으뜸인 뷰를 자랑하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피자도 너무너무 맛있어서, 배고픔과 피로 누적으로 짜증이 최고치에 다다랐던 어린이의 기분까지 삭 풀어주었다.

과정은 우당탕탕이었지만 결과는 아름답게 이탈리아를 떠나면서 이번 여행의 전반부가 끝났다. 여행의 후반부는 오스트리아와 독일에서 소시지와 맥주를 잔뜩 마시며 쉬엄쉬엄 흘러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