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기로 했으니 가긴 갔지만
솔직히 말해서, 별로 베네치아가 가고 싶지 않았다.
동선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이번 여행은 이탈리아 북부 산간 지방을 둘러보는 게 주였기 때문에, 알프스를 반시계 방향으로 둘러보고 오스트리아를 거쳐 독일로 돌아가는 게 지도상으로 예뻐 보였다. 그런데 중간에 갑자기 동쪽 해안까지 튀어 나갔다가 이미 한번 지나갔던 길을 다시 거쳐야 하다니, 영 재미없는 느낌이었다.
물론 우리 일행 중 간절히 베네치아를 가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면 충분히 즐겁게 갈 의향이 있었다. 하지만 베네치아는 일반적인 이탈리아 여행에 빠지지 않는 최상위 티어 명소! 나와 시부모님은 이미 십여 년 전 베네치아에 다녀온 적이 있었고, 남편은 가본 적은 없지만 동선이 어그러지며 왕복 7시간의 운전이 추가되는 상황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우리는 베네치아에 가게 되었다. 이미 숙소 예약도 되어 있고, 베네치아에서 1박을 하지 않는다면 다른 숙소에서 숙박을 연장해야 되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누군가 아주 적극적으로 귀찮음을 감수하지 않을 거면 그냥 원래 정해둔 데로 하는 게 평화 유지에 도움이 되었다랄까…
코르티나 담페초를 떠나는 날, 간밤에 산사태가 나 경로가 변경되며 이동 시간에 30분이 추가된다. 쉬엄쉬엄 즐기며 가려던 계획을 뒤로하고 부랴부랴 차를 달렸다. 장시간 이동에 어린이는 지겨움으로 몸부림을 치고, 앞자리 좌석을 발로 걷어차다가 아빠에게 혼쭐이 나 기분이 엉망 친장인 채로 베네치아에 입성했다. 본섬으로 들어가는 수상 버스 옆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리니, 날씨가 말도 못 하게 뜨겁다. 지난 1주일 간 산간 지방에서 더위를 잊고 지내다가 바닷가의 습기를 머금은 햇볕 아래 서있으려니 제대로 구경을 하기도 전인데 벌써 지쳤다. 이에 더해 하필이면 주차장과 베네치아 본섬을 운행하는 수많은 버스 회사 중에서도 제일 작은 배를 운영하는 회사에 당첨되고 만다.
콩알만 한 배에 끼여 앉은 채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섬에 도착하고 나니, 갑자기 동화 같은 수상도시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우리는 아기자기한 운하를 따라 걷다가 오랜만에 제대로 된 이탈리아 음식을 먹었다. 돌로미티에선 숙소에서 요리를 직접 해 먹거나 절인 고기나 감자를 주재료로 쓰는 중부 유럽 느낌의 음식을 주로 먹었기 때문에, 1주일 만에 먹는 피자와 파스타가 반가웠다. 돈 없는 20대 여행객일 때에는 엄두도 못 냈던 곤돌라도 타고, 산 마르코 광장에서 젤라또와 차가운 음료도 먹었다. 다시 수상버스 시간이 되어서 주차장으로 돌아갈 때에는 갑판에서 (여전히 햇살은 뜨거웠지만) 시원한 바닷바람을 즐기며 멀어져 가는 베네치아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행운도 누렸다.

짧지만 알차게 관광객 모드로 섬을 즐기고, 베네치아 메스트레역 근처의 호텔로 돌아와 에어컨 바람 잠깐 쐰 후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 더위로 집 나간 가족들의 입맛을 되찾기 위해 내가 고른 식당은 호텔 바로 앞에 위치한 중식당이었다.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오는 곳인지, 메뉴에 김치찌개나 짜장면 같은 한식도 포함되어 있고 요리마다 한글 설명까지 쓰여 있었다. 땀 많이 흘린 날 짭짤한 감칠맛의 중식을 먹으니 보양식이 따로 없었다. 온 가족 원기 회복에 든 비용이 산 마르코 광장에서 시켜 먹은 음료 다섯 잔 가격 밖에 안 되는 것이 또 하나의 기쁨이었다.
베네치아에서 보낸 반나절은 산악 지방만 여행하던 중 바다 풍경으로 리프레시를 하게 하는, 여행 중 짧은 여행과 같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베네치아 일정을 넣은 건 역시나 조금 무리였다는 생각을 한다. 더위와 장거리 이동으로 인해 어린이도 어른들도 가장 체력적으로 힘들었던 하루였고, 관광객이 너무 많아서 광장에 그냥 있는 것만으로도 질리는 느낌이 있었다. 근데 뭐, 이미 지나친 곳이니, 어쩔 수 없지. 여행의 모든 순간이 기대와 만족감으로 반짝거리면 좋겠지만, 꼭 그렇지 않을 때도 있는 거니까. 그것까지 여행이라는 경험의 일부라고 받아들이고 또 다음 목적지를 향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