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하지만 안 가도 괜찮아
밀라노는 내가 15년 전 한 달간 유럽을 여행했을 때 마지막으로 들른 도시였다. 패션의 도시라는 명성에 걸맞게 아름다운 차림새를 한 사람들이 오래된 것과 새것이 공존하는 근사한 거리를 돌아다니는 모습으로 마음속에 남아 있다. 그렇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밀라노를 과감하게 패스했다. 어린이의 체력 안배 및 그에 따른 심기 경호가 일정 짜기의 우선 고려사항 중 하나였기 때문. 이번 여행의 주 목적지인 돌로미티 지역에서의 일정을 맞추기 위해서는, 3일 차 저녁 밀라노 공항에서 부모님을 픽업하고 공항 근교 숙소에서 하루를 잔 후, 곧바로 떠나야 시간이 맞았다.
만 3세 어린이와의 여행에는 빈틈을 많이 둬도 시간이 빠듯하다. 만약 어린이가 없이 어른들만 다니는 여행이었다면, 부지런을 떨어 밀라노 시내에서 두오모 정도는 충분히 구경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이와의 여행은 어린이가 너무 졸려서, 너무 안 졸려서, 밥이 먹기 싫어서, 더 오랫동안 장난치면서 음식을 먹고 싶어서, 차 타기 전에 화장실에 가고 싶지 않아서, 방금까지 진짜 괜찮다고 하다가 출발하니까 쉬가 하고 싶어서, 선크림이 바르기 싫어서, 엄마가 꺼내놓은 빨간색 선글라스 말고 트렁크 안에 집어넣은 파란색 선글라스를 껴야 해서, 자기 몸보다 더 큰 가방을 꼭 직접 끌고 싶어서, 카시트 안전벨트가 갑갑해서 등의 갖가지 사유로 지연된다. 즐겁자고 온 여행에서 어린이를 재촉하며 화병에 걸리는 것 보다야, 유명하지만 안 가도 괜찮아- 마인드로 여유로운 일정을 짜는 편이 낫다.
어디선가 이탈리아는 대충 가도 좋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탈리아에서 제일 크다는 대성당을 포기했지만, 우연히 발길이 닿아 들르게 된 소도시도 이탈리아의 정취를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밀라노 근교의 휴양 도시 꼬모와 돌로미티 지역으로 이동하는 길에 들렀던 트렌토가 그랬다.
밀라노 근처에서 가볼 만한 손꼽히는 관광지로 알려진 꼬모 호수에 큰 기대를 갖지 않고 방문하게 된 것은,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미네소타가 주 슬로건을 ‘만 개의 호수’로 삼을 만큼 호수가 흔하게 널려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 근처에서 봐온 야생의 호수와 기원전 2세기부터 로마인들의 손길이 닿은 유서 깊은 호숫가 마을은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스위스를 지나오며 나무로 지은 삼삼한 산악지대 가옥에 눈이 익숙해져 있다가, 붉은 기와 가옥이 빼곡한 이탈리아 마을을 만나자마자 느껴지는 정취부터 색달랐다. 건물 사이의 오래된 돌길을 따라 광장을 지나니, 호수를 둘러싼 언덕 위에는 꼭대기까지 근사한 멘션들이 들어서 있었다. 적당히 모인 관광객들로 흥겨우면서도 과하게 붐비지 않아 더 좋았다.
다음날. 밀라노에서 돌로미티로 향하는 길에 가장 유명한 곳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으로 알려진 베로나이다. 점심이라도 먹고 갈까 살펴보는데, 이날 베로나의 기온이 35도로 예보되어 있다. 지난 몇 년 간 미네소타의 시원한 여름에 길들여진 우리는, 전날 꼬모 호수에서 30도 정도의 날씨에 잠깐 산책을 하는 것만으로도 더위에 지쳐 나가떨어졌기 때문에, 과감하게 베로나를 스킵하기로 했다. 휴게소에서 끼니를 때워야 하나 고민이 될 때쯤, 우연히 마주친 작은 도시 트렌토에서 점심을 먹기로 결정. 올드타운 근처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광장까지 걸어 들어갔다. 널찍한 광장을 가운데 두고 성당과 분수대가 있고, 주변 골목에는 상가가 자리한 전형적인 귀여운 유럽 구도심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식사 후 한가한 골목을 이리저리 거닐며 느긋한 시간을 보냈다.
트렌토라는 지명은 이 날 이동하는 경로를 찾아보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방문한 도시라고 하더라도, 노상 야외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고, 길거리를 걸으며 젤라또를 먹었다면, 이탈리아 여행의 본질은 그럭저럭 경험한 거 아닐까? 유명한 곳을 가는 것만 여행인 건 아니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