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선 결과를 기다리며

2016년 하반기와 2017년 상반기를 미국에서 보내고 있는 한국 사람만큼 뉴스보느라 바쁜 사람이 또 있을까요? 한국 19대 대선을 맞이하여, 요 몇달 사이 두 나라에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나 잠시 되돌이켜 보려 합니다.

작년 가을에는 미국 대선이 있었습니다. 만19세 이상의 국민은 자동으로 선거인명부에 등록이 되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은 선거권이 있더라도 직접 투표를 위한 등록을 하지 않으면 선거에 참여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DMV와 같은 관공서, 그리고 길거리에서 투표 독려를 하는 사람들을 보며, 한국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미국의 대선 분위기를 실감했던 것 같습니다. 정치에 대한 의견 표출이 한국보다 훨씬 자유로운 나라인데다, 트럼프 대 힐러리라는 개성 뚜렷한 두 후보가 맞붙은 선거였던터라, 각종 방송에서는 매주 패러디가 터져나왔고, 친구들과 모였을 때에도 늘 선거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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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6일 있었던 첫 대선 토론날에는 친구들과 학교 바에서 맥주잔을 기울이며 토론을 봤습니다. 저의 간곡한 요청으로 화면에 캡션이 켜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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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친구들은 이런 게임을 하기도 했습니다. 후보자들이 토론에서 어떤 단어나 문구를 사용할 지 예측한 후에, 실제로 해당 문구가 언급되면 점수를 얻는 게임입니다. 저를 비롯한 외국인 친구들은 번외 경기로 본인의 출신 국가가 몇 번 언급되는지 세어봤는데, 한국도 나름 고득점 국가였답니다. (멕시코나 중국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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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서는 힐러리와 트럼프의 이름을 딴 메뉴를 출시해 판매했습니다.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DC답게, 이날도 클린턴이 한참 앞서가고 있군요.

 

그즈음 한국에서는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의 전모가 밝혀지며 박근혜 전대통령을 향한 하야 요구가 터져나왔습니다. 허구헌날 스마트폰에 코를 박은채 기사를 보며 한숨을 쉬고 있는 저에게, 친구들은 대체 뭘 하고 있냐고 물어보곤 했습니다. 한국 정치에 대한 장황한 연설을 끈기있게 들어준 그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20161105_170555.jpg

광화문을 비롯한 전국 각지의 촛불 인파가 조금씩 커지고 있을 때, 작은 규모이지만 워싱턴 백악관 앞에서도 시위가 있었습니다. 개 돼지 탈을 쓰고나타난 귀여운 학생들의 뒷모습을 찍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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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모두의 예측과 달리 미국 대선은 트럼프의 승리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역대급으로 훌륭했던 전대통령 오바마를 떠나보내고, 예측 불가의 대통령 트럼프를 맞이하게 된 미국 친구들의 표정은 참으로 착잡해 보였습니다. 우리도 지난 대선 때 그랬다며 니생각 내생각 똑같다고 그들을 위로해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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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촛불시위가 계속되었고, 미국을 비롯한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한인들도 멀리서 작은 힘을 보탰습니다. 뉴욕의 코리아타운에서 촛불 시위가 있었던 이 날에는, 석사 때 함께 대학원을 다녔던 지인을 우연히 만나게 되어 굉장히 반가웠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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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선거 결과가 나오자마자 트럼프의 당선에 반발하는 시위가 시작되었습니다. 트럼프의 대통령로써의 부적합성은 물론이고, 총 투표수로는 클린턴이 승리했지만 선거인단 제도 하에서 승패가 뒤바뀐 점은 많은 미국인들이 선거 결과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관련해서 선거일 며칠 후 동기들과 나누었던 대화의 일부를 기록합니다.
친구1: 선거인단이 주별 투표 결과대로 반드시 표를 던질 필요는 없다며? 그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면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걸 막을 수 있는거 아니야?
친구2: 그런 식으로 투표 제도를 악용하는건 오히려 민주주의에 반하는거야. 나도 트럼프가 된건 싫지만 그건 아닌것 같아.
친구1: 와 나의 희망을 그렇게 부수다니. 너 완전 어린이들한테 산타클로스는 없다고 말하는 그런 스타일이구나.
나: 그게 바로 산타가 없다는 걸 알게 될만큼 충분히 어른이 된 다음에야 투표권이 주어지는 이유 아닐까?
친구3: 야 다들 잠깐만… 산타가 없다고???

 

우울하고도 혼란스러운 나날들이 흘러갔습니다. 12월, 한국에서는 박근혜 전대통령에 대한 탄핵 가결이 이루어지고, 해가 바뀌어 2017년 1월에는 미국에서 트럼프가 제45대 미 대통령에 취임했습니다.

탄핵 인용이 되던 날, 저는 마침 미국 동부를 방문하신 어머니와 함께 뉴욕을 여행하던 중이었습니다. 코리아타운에 있는 고깃집에서 삼겹살과 소주를 시켜놓고 뉴스를 틀었습니다. 심장을 쫄깃하게 만들었던 ‘그러나’가 몇 차례 지나가고,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주문이 흘러나왔습니다. 엄마와 저, 남자친구 셋이 기쁨의 건배를 몇 잔이나 했네요. 몇달에 걸쳐 저로부터 지루한 한국 현대사 강의를 들어왔던 외국 친구들에게서도 축하의 문자가 몇 통이나 왔습니다. 정말 두근거리는 밤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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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요즘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라고 물어보는 친구들에게 구구절절 왜 이 선거를 치르고 있는가 설명해주다보면, 고작 30년밖에 안된 한국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빠르게 성숙했는지 새삼 느끼게 되더군요. 선거 운동 기간동안 후보간, 지지자들간의 흙탕물 싸움을 보며 한국 사회와 정치 지형에 대한 회의감에 괴로운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저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 간에 한국 사회가 조금씩 더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저희 과 동기들 중에는 국가의 수장을 뽑을 수 있는 권리가 없는 나라에서 온 친구들도 있습니다. 쉽지 않게 얻은 이번 선거의 기회를 마음껏 누립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