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친구
‘외국인 친구’라는 말이 조금은 촌스럽게 들리는 시대가 아닌가 생각되면서도, 전 아직도 외국인 친구가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작년의 몽골 여행을 되돌이켜 생각해보면, 울란바타르에서 몽골인 친구 수메이를 만나 함께했던 시간이, 그곳에서 봤던 아름다운 자연풍경과 신기하게도 한국인과 닮은 현지인들의 생김새보다도, 훨씬 더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2008년, 중국 상하이에 교환학생을 갔을 때 가장 친하게 지낸 두명의 친구가 있었으니, 태국에서 온 수완나와 몽골에서 온 수메이가 그들입니다. 수메이의 본명은 엔 뭐시기로 시작하여 가래끓는 소리 비슷한 ‘으흐르크’ 류의 소리로 끝나는, 평범한 언어구사능력을 지닌 한국인은 절대 발음할 수 없는 이름입니다. 그녀는 중국에서 공부를 하기로 하면서 ‘수메이’라는 중국식 이름을 하나 스스로에게 붙였습니다. 당시 중국에서 학부 4학년에 재학중이던 그들의 중국어 실력은 꽤나 훌륭한 편이었습니다. 형편없는 실력이지만 어쨌든 중국어 문장을 간신히 만들어낼 정도의 실력인 제가 합세했습니다. 중국인들의 눈에는, 우리 셋이 중국어로 조잘거리는 모습이 흡사 외쿡 처자들이 미수다에 출연해 한국어로 수다떠는 모습처럼 웃기고 신기했을 것 같습니다. 같이 택시라도 타면 기사 아저씨들이 도대체 짐작이 안 간다는 표정을 지으며 너희 어디 출신이냐고 물어봤던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네요.
졸업 후 각자 서로 다른 나라에서 살아가기를 몇 년여. 페이스북에 올라온 서로의 사진에 좋아요를 눌러주는 정도로만 안부를 전했습니다. 그러다 제가 몽골을 여행 루트에 넣게 되면서 아주 오랜만에 수메이를 만날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운 나쁘게도 중국의 페이스북 차단과 울란바토르의 열악한 인터넷 환경, 거기에 몽골 최대의 명절인 나담축제기간이 겹쳐 연락이 수월하지 않았습니다. 이대로 수메이를 못 만나고 떠나는게 아닌가 싶었는데, 몽골에서의 마지막날 저녁 겨우 연락이 닿았네요! 그녀는 울란바토르 국립 극장에서 아주 멋진 몽골 전통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보여주더니, 직접 운전하여 절 숙소까지 데려다주기도 하면서 커리어우먼의 향기를 물씬 풍겼습니다. 낯선 이들과의 만남이 이어지는 여행 속에서, 잠깐이나마 익숙한 얼굴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마음에 큰 위안과 편안함을 주었습니다.
여행이 끝나고 저는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아 참고로 수완나는 중국에서 만났던 한국인 남자친구와 7년간 연애한 끝에 작년에 결혼을 해서, 지금은 몽촌토성 근처 어딘가에 살고 있습니다. 결혼식 직전에 여행을 떠나게되어 미안한 마음이 컸지요. 그리고나서 얼마 전, 수메이가 휴가차 한국에 왔습니다. 상하이와 울란바타르에 이어, 이제 서울에서 서로 다른 세 국적의 친구들이 다시 모였습니다. 중국과 몽골에서 반 벙어리 신세를 면치 못해 늘 그들의 도움을 받아왔던 제가, 이번엔 서울 지리를 척척 안내하고 음식주문을 도맡아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상하이의 클럽을 쏘다니고, 베이징카오야 식당에서 오리 한마리를 나눠먹던 기억, KTV(노래방)에서 열심히 혀꼬이는 중국노래를 부르며 밤새 놀던 추억을 얘기하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여행 중 만났던 어떤 한국인 아저씨께서, 그래도 한국인은 한국 사람과 있을때 가장 편하고 마음이 맞지, 라고 말씀하셨던 적이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언어, 같은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이어야 함께 느낄 수 있는 기쁨과 즐거움이 분명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세계에 살고있는 70억명의 사람들 중에 내가 친구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이 그 중 1%도 안되는 한국 사람들 뿐이라고 생각하면, 세상의 너무 많은 가능성을 저버리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걸 확인시켜준 나의 친구들 수메이와 수완나에게 이 기회를 빌어 감사의 말을 전해봅니다.

2009년 봄, 상해교통대학 쉬지아훼이 캠퍼스에서 즐거운 한때

2013년 여름, 수메이와 울란바토르에서 4년만에 재회

2014년 여름, 서울의 흔한 팥빙수집에 다시 모인 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