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을 떠나며

함부르크, 슈베린을 거쳐 베를린에 와 있습니다. 북유럽의 높은 물가에 잔뜩 빈곤해져 있었는데, 만원 이하로 밥 한끼를 해결할 수 있는 나라로 넘어 오니 이제 좀 살 것 같습니다. 함부르크에 들어서는 순간 보이는 4차선의 도로와 높은 고층빌딩, 거대한 쇼핑센터가 대도시의 느낌을 물씬 풍깁니다. 한 나라의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두 발로 걸어다닐 수 있는 규모의 도심을 갖고 있던 헬싱키나 코펜하겐을 보다 와서 더더욱 그런가 봅니다. 대신 화려한 도심 이면에 존재하는 슬럼화된 구역과 이민자들로 채워진 허름한 동네들도 함께 눈에 들어옵니다. 그러고보면 북유럽 사회에서 강력한 소득재분배 시스템이 가동될 수 있는 기반에는 적은 인구로 이루어진 작은 규모의 동질성 높은 사회로 인한 강한 공동체 의식 형성이 가능했기 때문이 아닐까 막연한 추측을 또 한번 해봅니다.

대중들에게 유럽 여행이 막 유행하기 시작하던 8-90년대에는 독일이 높은 시민의식을 보유한 선진 사회의 표본으로 여겨졌었는데, 저는 약 3주간 북유럽 4개국을 여행하면서 비슷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무수히 많이 보이는 보트와 캠핑카, 평일 낮에 아기를 등에 업고 걸어다니는 남자들, 저녁 일찍 문을 닫는 상점들을 보며 이 사회가 레져와 여가, 가족과 함께 하는 삶을 중시하고 높은 수준의 남녀평등을 보유한 곳이라는 점을 느꼈습니다. 또 이곳은 시골의 모텔 주인장과 세탁소 아저씨까지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미스테리한 수준의 외국어 교육 시스템을 보유했으며, 자동차에게는 한없이 불편하지만 보행자와 자전거에게는 아주 관대한 곳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요람에서 무덤까지 이 사회를 실제로 경험해 본다면 여행자의 시각과는 또 다르겠지요. 제가 본 모습이 그럴듯한 겉모습에 불과할 가능성도 있겠구요.

북유럽 여행을 마감할 때 쯤 일어난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어 마지막으로 적으려합니다. 베르겐에서 푸닌쿨라로 도심 전망을 보고 내려와 식당으로 들어갔습니다. 옆 테이블에서 미국에서 여행온 부부를 담당하는 웨이터가 그들과 친근하게 대화를 시작합니다. 온 몸에 문신을 새긴 웨이터 청년은 알고보니 스웨덴 사람이었는데, 스웨덴에서 매일매일 똑같은 삶을 반복하다가 50대 쯤 되어서 “내가 뭘 하고 있지?”하는 생각이 들게 될까봐 노르웨이로 왔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온 여자가 “두 사회가 많이 다른가요?”하고 놀라 묻자, 스웨덴 청년이 “스웨덴 사람들은 게으른데 노르웨이 사람들은 늘 부지런하게 몸을 움직여요, 등산도 좋아하고. 이 곳에서는 스웨덴보다 훨씬 자기 삶과 건강에 신경을 많이 쓰죠.”라고 대답합니다. 제 눈에는 고만고만, 비슷비슷해 보이는 사회였는데, 그들간에도 끝없는 비교와 불평불만이 있다는 점에 웃음이 픽 났습니다.

그 스웨덴 청년이 노르웨이에 대한 불평불만이 생길 때 쯤이 그가 진정한 노르웨이 사람이 된 때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저는 물론 고작 3주 있었으니 좋은 기억만 잔뜩 안고 북유럽을 떠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