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로오고 배로가는 탈린

발트해 연안에 나란히 붙어있는 세 개의 작은 나라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흔히 발트3국이라고 부르는 이 생소한 나라 중 한 곳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에서 1박을 하기로 했습니다.

헬싱키에서 페리를 타고 두시간 반, 배에 난 창 밖으로 빨간 지붕과 녹색의 첨탑이 어우러진 스카이 라인이 눈에 들어옵니다. 고색창연한 중세풍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는 탈린의 구시가지 모습입니다. 엄마가 핀란드는 모든것이 너무 심플하다며 영 심심해 하시는 눈치였는데, 탈린은 중세 도시를 좋아하는 울 오마니의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7~8백년은 족히 된 도시의 울퉁불퉁한 돌길을 이틀동안 천천히 돌아다녔습니다. 탈린 구시가지는 고지대와 저지대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따로 전망대에 올라가지 않아도 고지대에 오르면 멋진 도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3유로에 입장가능한 도시의 성벽 위 테라스를 걸었던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점원들이 중세풍의 복장을 하고 주문을 받는 ‘올데한자’라는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음식도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그리 넓지 않은 동네임에도, 아기자기한 건물을 구경하면서 돌아다니는 재미에 이틀이 전혀 지겹지 않았습니다.

이번 여정에서 탈린은 배로 오고 배로 나가는 도시입니다. 스톡홀름으로 가는 길에는 17시간동안 타이타닉같은 커다란 크루즈선을 타게 되었습니다. 말이 배지, 바다위를 떠다니는 거대한 호텔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레스토랑, 카지노, 바, 면세점 등 없는게 없고, 널찍한 침대칸에는 번듯한 욕실이 딸려있습니다. 선내 면세점에서 사람들이 맥주를 박스째로 와구와구 쇼핑하는 모습이 재밌습니다. 방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보면 얼굴이 벌개진 덩치 큰 금발 아저씨들이 비틀비틀 선실 복도를 돌아다닙니다. 무슨 물건에든 세금이 어마어마하게 붙는 북유럽인들에게 이곳은 마음놓고 음주와 흡연, 일탈이 허용되는 카니발의 공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지금 미동도 없이 바닷물을 가르며 나아가는 빅토리아호의 한 선실에 누워 있습니다. 바다와 하늘이 구분되지 않는 깜깜한 발트해의 한 가운데는 우주를 유영하는 상상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입니다. 유라시아의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여행을 와서, 이보다 더 먼곳을 여행하는 또 다른 존재를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잠자리에 듭니다.